작성자 이동윤  작성일 201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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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 보면 겉으로 침묵할 수는 있지만, 무(無)란 존재하지 않는
달리다 보면 겉으로 침묵할 수는 있지만, 무(無)란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기는 대부분 혼자 늘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알아듣기 힘든 외침과 목소리들, 중얼거림과 날카로운 엔진 소리 등 속도와 충격이 지배하는 길거리와 도로, 혹은 공공장소를 떠나자마자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이 침묵의 고요함이다. 모든 것이 다 조용하고 주의깊다. 그래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달리다 보면 꼭 귀가 숨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침묵이 엄습한다. 달리는 주자는 마치 차가운 바람이 거칠게 불어 하늘에서 구름을 내쫓듯 침묵을 받아들이게 된다.

숲 속에는 꼬불꼬불 좁고 긴 산길을 따라 달리다 혹시 길을 잃지는 않을까 가볍에 흔들리는 불안한 침묵이 있고. 여름 날 오후 작렬하는 태양 아래 그대로 노출된 자갈길에서는 투명한 죽음처럼 눈을 내리깐 채 나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듯 나지막하게 웅얼되며 앞으로 나아가는 초월할 수 없을 정도로 집요하고 결정적으로 힘들고 불안정한 침묵이 있다.

이른 아침에는 몸이 풀리지 않는 둔한 발걸음과 아직 잠이 들깬 주변의 나무들을 깨울까 두려운 주의 깊은 침묵이 있고, 눈 속을 달릴 때는 주변의 어느 것도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이 얼음 속에 갇힌 듯 정지되고, 결합되고 억눌린 중단된 침묵이 있고, 밤에 달릴 때 느끼는 침묵은 몇 시간 잠을 자다가 무서운 꿈을 꾸다가 갑자기 깨어나기라도 하는 듯한 김동적이고 신비로움 그 자체다.

달리기에서 침묵이란 잡담아 끝나는 순간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침묵은 모든 것을 가리고 뒤섞으며, 나를 제멋대로 침범하여 귀를 멍하게 만들던 소음이 잦아드는 순간에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서 시작된다. 잡담은 사방에서 흘러넘치도록 들어와 듣는 사람을 귀찮게 하고 괴롭히고 분별을 잃게 만든다.

항상 무슨 일인가를 하게 하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게 하고, 항상 무슨 일엔가 몰두하게 만든다. 말은 만들어지 사물들과 예상 가능한 동작들, 규격화된 행동들, 학습과 훈련을 통해 배운 태도들의 규약들 속에 파묻혀 있다. 그것은 서로에게 약속되어 맞추어져 있는 수단들이다.

말은 세계의 일상적 생산 속에 고정되어 그것에 참여하고 있다. 도표와 숫자, 대차대조표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 암호와 명령, 총합과 결정, 증언과 법전이 있어서 말이 곧 매뉴얼이며, 행위의 기록물이다. 달리기의 침묵 속에서 말은 결국 사용법을 잃어버리게 된다.

오직 달리기만 있다. 달리기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각 달리기의 종류와 주로의 형태에 고정된 어떤 기준이 있다고 설명하는 달리기 안내책자를 있는 그대로 맹신하면 안 된다. 나만의 달리기는 침묵 속에서 더 잘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번역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마의 달리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다.

달리기 또한 말 이전에 먼저 보고, 듣고, 냄새 맡는 것에서 시작된다. 달리는 사람에게 저항하는 유일한 단어는 '무(無)"의 단어다. 달리다 보면 무(無)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된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생각하고, 무슨 말인가를 스스로에게 계속 건네고 있다. "잘 하고 있어!", "이대로 쭈욱 가자!", "원래 이런 거지 뭐", "자,자, 됐다 됐어!" 침묵을 통해 스스로 듣게 되는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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