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이동윤  작성일 201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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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피곤함이 내 존재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엄청난 피곤함이 내 존재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달리다 보면 극심한 피로 때문에 몸이 마치 바람에 휩쓸려 가는 한 장의 낙엽처럼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앞으로 달려나가는 그 도취의 순간을 잊어버린다. 많이 달려서 피곤이 극에 달하면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길이 똑바르고 심하게 경사지지 않다면 더 이상 길을 바라볼 필요가 없으며 다른 아무런 생각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식이 하던 일을 이제는 두 발이 성공적으로 디딜 만한 곳을 찾아내고 장애물을 알아서 피한다. 이제는 완전히 포기의 길만 남았을 뿐이다. 꿈 속을 걷는 것처럼 달려왔지만, 이제는 걸음도 안정되고 속도도 더 빨라진다. 그러면서 더 이상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기로 한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느끼지 않아 온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길이 두 다리를 들이마시고, 정신은 마치 구름처럼 위에서 떠다닌다. 오랫 동안 달려왔어도 마치 내가 달리기에 실려 가는 것처럼 경쾌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발을 내딛는 순간 때로는 길어질 수도 있는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드디어 몸 전체가 숨을 고르고 두 발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라는 신호를 받는다. 마치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비상 같기도 하다.

달리면서 받든 경쾌한 느낌은 달리기가 느려지는 순간의 느낌과 확연히 구분된다. 달리는 동안 근육이 완전히 긴장하는 것을 느낄 때의 그 도취감이 아니라 피로와 점진적인 도취 상태로 도달하는 정신의 초연함에 가깝다. 달리기의 경쾌함이란 곧 피로해지지 않고 중력을 이겨내는 것이며, 육체야말로 최고의 존재라고 확인하는 것이다.

결국 두 발이 길에 딱 붙어 일체를 이룰 때 달리기의 떠다님을 제대로 이루어지고, 피로해진 정신은 두 발의 피로에 부딪쳐 일어나는 반응을 잊어버린다. 무겁고 둔중한 몸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밀착감, 끊임없이 지면에 내려놓는 두 발, 매 순간의 발누르기, 다시 도약하기 위해 반복해야 하는 착지, 다시 떠나기 위해서는 매번 뿌리를 박아야 한다.

주로를 얼싸안는 이 행위를 되풀이해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은 그만큼의 매듭을 새로 만들어낸다. 산책길과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컴퓨터 키보드와 지하철과 승용차, 그리고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먼지도 일으키지 않고 접촉도 없고 기복도 없는 공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비도 태양도 중요하자 않다. 겨절과 시간은 전혀 마모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면 위의 두 발은 거의 곤강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두 발이 차지하지 않는 공간 전체를 달릴 수 있다.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의미다. 만남의 장소에서 누구를 기다리며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을 구르고 제자리 걸음을 걷거나 발이 저리는지 주무르기도 한다. 두 팔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몰라 앞뒤로 살짝 흔들거나 몸에 딱 붙이고 있다. 불안정한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달리는 사람은 안정된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자연이 펼쳐지고 실현되며, 존재의 긴장이 느슨해지고 율동의 균형이 제대로 유지된다. 발은 그 자체로서 공간의 작은 부분에 속하지만 달리기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이 세상의 공간을 연결하게 되는 것이다. 두 다리의 간격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으며, 그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나를 달리게 만든다. 이 때의 공백은 아무 의미 없는 무(無)가 아니라 순수한 잠재성이며, 영감과 유희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이렇게 달리면 공간의 깊이가 유기적으로 구성되고 풍경이 되살아난다. 이런 운동에서 얻는 즐거움은 속도와 고양감, 도약과 수직적 초월을 부추기는 것들에 의해 중력을 위반하는 데서, 중력에 대해 승리를 거두는 것에서 비롯된다.

달리는 것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중력, 즉 끌어당기는 지면의 힘을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허리가 끊으질 것 같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몸이 삐거덕거리고 더 이상 숨쉬기가 힘들어지면 달리기를 멈추게 된다. 나를 들어올리거나 중력을 속이거나 속도나 고양에 의해 언젠가 중단해야 하는 나 자신의 조건에 환상을 품는 것이 아니라 지면의 단단함과 육체의 허약함을 깨닫고 땅에 발을 내딛는 동작으로 나를 드러냄으로써 나의 조건을 실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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