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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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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윤 |
작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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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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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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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신문133]달리기와 건강(81): 권태로운 일상으로부터의 최 |
[의사신문133]달리기와 건강(81): 권태로운 일상으로부터의 최상의 도피는 열정적 달리기다
요즘 아침에 출근하면서 현관에서 내가 운동화를 신으면 집사람이 말한다. "그냥 타고 가지!" 그리고는 둘이서 서로를 쳐다보며 크게 웃는다. "하하하!" 나는 곧 도로를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기분이 좋아서 웃고 집사람은 소용없는 말을 한 자신이 어색해서 웃는다. 바깥의 차분한 아침 공기가 바쁘게 깨어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뛴다. 그러면 속으로 외친다. "자, 달려보자!"
항상 걷거나 달리며 '경쟁자가 없는 나의 두 발"로 땅의 너비를 재어본다. 그러면서 혼자 나는 그저 달릴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달려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하다. 그 동력이 출발의 외침이다. "자, 달려보자!" 그 곳에는 넘치는 즐거움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 달리기 위한 동력, 즉 동기는 외부에서 부여되지 않는다.
바깥 날씨가 부른다거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거나, 인정이 필요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슴 속에서 치받는 격심한 달리기 욕구다. 가만히 앉아 있는 부동성의 도시 삶은 권태롭고 재미없고 견딜 수가 없다. 바람과 빛과 향기를 찾아 도로든, 산책로든, 산길이든 어떤 길이라도 좋다. 그냥 달려가 보는 것이다. 난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길을 나선다는 것은 항상 떠나는 것이다. 뒤에 모든 것을 남겨두고 나만 떠나는 것이다. 언제 어느 때라도 되돌아올 수 있는 교통수단에는 없는 무언가 결정적인 것이 있다. 출발할 때 느끼게 되는 경쾌함과 불안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이다.
경쾌함은 모든 것을 뒤에 남겨두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지만 나는 달리기에 전율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불안은 포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실패한다는 것은 부상으로 다시 돌아는 오되, 달려서는 오지 못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은 그제서야 불평하고 원통해 한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여기도 가보고 싶고 저기도 가보고 싶다고. 보고 싶고, 살고 싶고, 달리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 주위에는 온 몸이 마비되었거나 눈이 없거나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으면서도 정상인보다 더 열심히 달리고 움직이고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말한다. 자유스럽게 움직일 수 있을 때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다해보라고. 달리기도 그 중의 하나다. 슬픔과 권태, 차갑고 칙칙한 날씨, 우중충하고 침울한 공기를 피해 달려가자. 달리면 무언가 내가 항상 앞질러 가고 있다는 듯한 심오한 느낌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달리기를 계속하게 하는, 즉 달리지 않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강하게 어필하는 느낌이다.
달리기는 피곤하고 녹초로 만들기도 하지만, 나와 세상을 잊어버렸다는 데서 또다시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게 만든다. 과거나 현재의 힘들고 진력을 다했던 모든 지난 이야기들도 비가 창문을 스치든, 낙엽이 지면을 굴러가듯 규칙적으로 두들기는 발걸음 소리에 덮여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녹초가 된 몸이 모든 것을 다 파묻어 버린다.
그래도 나는 왜 지금 달리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달린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 위해서 달린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달린다. 나는 이곳에 일시 체류하고 있지만 다시 다른 곳에도 일시 체류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 떠나기 위해서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달려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밖에 나가면 달린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않고 달린다. 출근길에는 넥타이 차림으로, 일과 후에 운동복 차림으로 옷만 바뀌었지 달리기 자체는 똑같다. 영원으로부터 내려온 달리기에 대해 내 몸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기만 하면 현재의 대부분의 건강과 행복에 관한 고민이 저절로 해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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