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작-
칼
조연희
오후 네시, 구부정한
햇살이 노인의 등에 앉아 있었다
칼 갈아요. 왼 손으로 손잡이를 돌리며
오른 손으론 뭉특한 날들을 갈아내고 있었다
떨어져나간 무딘 날들이 쌓여
곱사등을 이룬
노인은 이윽고 휘청 일어섰다
칼 날을 벼리는 것이
숫돌의 눈물일까를 생각하다가
나는 내 벽장 속을 열어보았다
하나 둘 꽂아 둔 것이 어느새 수십 자루
칼집 속에서 칼들이 울고 있었다
챙챙 분노에 떨며
손끝만 대도 자지러지다
제 성질에 푸슬푸슬 자멸해 가는 것들도 있었다
호명당한 칼들이 숫돌 위에서 끝내
붉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하오
노인이 건네주는 칼을 받으며
덩달아 자꾸 허리가 휘어지는 것은 아마도
노인의 등 뒤,무덤 때문일 것이다
나는 번쩍번쩍 잘 벼려진 석양 한 자루가
구부러진 산 허리를 베어내는 모습을 보며
이제 그만 내 칼들을 눈부신 저녁 속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결선에 오른 제 졸작-
병동의 노래
김재남
신전을 오르내리듯 줄지어 수평의 눈빛으로 걷는다. 유리창 안으로 날카로운 직선의 빛이 들어온다. 얼굴마다 창호지를 바른 듯 창백하다. 마른 말들이 힘없이 끌려간다. 집어등처럼 매달린 링거병에 봄볕은 부질없이 무지개를 만든다. 그 속으로 먼 산지기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날리며 달아나고 자잘한 손에 잡힌 송사리의 눈들이 때꾼하다. 몇은 줄이 끊긴 연을 찾으러 산을 넘고 몇은 딱지를 따 먹고 땅을 따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헛배의 출렁거림, 산지기 아버지는 그해 겨울 폐암으로 들것에 실려 산으로 떠났다.
간호사는 말벌 같은 주사바늘을 또 꽂는다. 팔뚝너머로 느리게 꿈틀거리는 黑蛇가 대지의 충혈 된 눈들을 파먹고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연거푸 바닥으로 떨어진다. 낙하지점을 찾는 시간들이 매연처럼 폐부를 찌른다. 거푸 몰아쉬는 숨소리들이 침대위에 가지런하다.
까마득한 기억들이 끊어진 연처럼 회오리로 사라지는 밤, 어둠에 목이 졸린 별들이 하나 둘 흔적을 지우면 그때마다 달은 창문 밖으로 조등을 단다.
어느 시 사이트에 300여편의 시들이 응모를 했는데
그 중에서 제 졸작 '병동의 노래' 포함 20편이 예선을
통과 한후 마지막 자웅을 벌인 결과 당선작은
'칼'이 뽑혔답니다.
참으로 아쉽습니다.
쥔장님, 위로주 한잔 사 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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