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사
신랑 권철현 군이 제 고등학교 후배입니다. 왜 여러모로 부족한 저에게 이 결혼식의 주례를 맡아 달라고 했는지 아직도 의문입니다만, 오늘 새로 가정을 꾸며 인생의 힘찬 새 출발을 하는 두 분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혼자 힘으로 겨우 지고 왔던 무거운 짐을 이제 '둘이 함께' 쉽게 들고 갈 수 있다는 편안함 때문입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사람만이 누리고 책임져야 했던 기쁨과 잘못도 이제는 서로 함께 나누게 되는 것이 결혼입니다.
결혼을 하면 무엇이 생길까요?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은 가장 작은 사회조직이지요.
남남인 남녀가 만나 '우리'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부부간에는 '나'와 '너'라는 구별이 없으며 항상 '우리'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 만큼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고, 한 사람이 죽어서 헤어질 때까지 항상 생각해야 하는 것이, "내가 상대를 위해 무슨 기여를 할 것인가?"를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하는 고달픈 곳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가 '우리'를 위한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은 어떤 가치있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자'거나 '잘 먹고 잘 살자'거나 '사랑하자'거나 '봉사하자'도 좋습니다. 그런 목적 의식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용기를 갖게 하고, 불안과 불편감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게 됩니다.
신혼 때의 넘치던 사랑이 아이들, 직장일들로 충돌하게 됩니다. 이런 감정을 속으로만 꾹꾹 눌러 둔 채, 잘 되어 가는 척 속이는 것은 위험합니다. 결혼 생활에 필수적인 두 사람간의 강한 연대감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무시당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은, 상대가 나를 무시해도 될 만한 원인을 내가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 생기는 문제의 반은 바로 나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스스로 찾아 먼저 고치는 자세가 항상 필요합니다.
떨어져 살던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함께 살면서 마찰이나 불만이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지요. 숨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가지고 솔직하게 대화함으로써 문제 해결을 시도해야 합니다. 결혼 생활은 내가 관심을 갖고 잘 가꾸어 나가야 할 꽃 모종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있다고 잘 알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 가서는 절대 안됩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가며 건너라고 했습니다. 항상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확인하지 않으면 두 사람 사이에는 투명한 유리벽이 자리잡게 됩니다. 유리벽은 투명해서 눈으로 서로를 잘 바라볼 수는 있지만, 서로를 손으로 만지거나 말을 전할 수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 후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이유는, 자신은 변하지 않은 채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만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연애할 때는 매번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찾았기 때문에 항상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결혼 생활은 우선 조그마한 변화에도 민감해지기 때문에 정체된 상태에 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결혼 생활의 축인 '사랑'이 지겨워 가출을 해버리기 때문에 권태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배우자의 행동이 믿음직스럽고 예쁘며 배우자가 소중하다는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나 상대의 행동이 불안해 보이고, 염려되고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상대의 단점만을 부정적으로 바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연애할 때의 사랑에 빠진 눈으로 배우자를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우리가 어떤 행동에 대한 배우자의 관심과 존경이 부족하다는 느낌과 그런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 본다면, 아무리 자상하거나 사려깊은 배우자의 소중한 행동들도 경솔하거나 둔감한 정반대의 성격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한 시선만으로 바라보십시요. 세상에 그렇게 예쁘고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러운 행동도 없을 것입니다.
부부간의 친밀도는 사회생활을 하는 용기의 원천이 되며, 일에 열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하고, 아무 조건없는 절대적인 지지를 배우자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결혼으로 신랑에게는 처가집이 생기고, 신부에게는 시집이 생깁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가풍을 접하게 되는 것이지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새로 접하게 되는 상대의 문화와 전통을 자기 입장에서만 비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양가의 가풍과 문화도 그럴 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발전되고 유지되어 올 수 있었습니다. 선입감을 버리고 양가의 문화는 있는 그대로 자기 것으로 받아 들이시길 바랍니다.
연애는 자기에게 맞는 사람을 구하는 과정이지만, 결혼은 서로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분이 힘을 합쳐 열심히 일하고 서로 사랑하고 인생을 즐기는 삶을 살아 가시길 빕니다. 오늘 바쁘신데도 새 출발을 하는 두 분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도 두 분을 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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