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반야심경 41-3] 부증불감(不增不減) 늘어나지도 않으며 줄어들지도 않는다 : 아상을 내려 놓아야 행복해진다
내 것이니 네 것이니, 늘었니 줄었니 난리를 피우는데, 사실은 존재의 참모습은 그렇지 않다. 바로 우리가 그것을 인식을 하기 때문에 조견오온개공 하니까 도일체고액, 즉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나만 옳다는 생각을 꽉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놓치면 큰일 나는 줄만 안다.
그러니까 내가 옳다는 그런 생각을 내려놓는 공부들을 해 나가야 참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봄바람이 온 세상에 부니 그대로 꽃이 피고 나뭇잎들이 푸르러 하나 같이 똑같은 봄이다. 세상이 공한 것을 발견하면 다 이런 시절이 되며, 그렇지 못하면 ‘뭔 소리?’라며 쳐다만 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불법을 이해하는 것은 언제나 항상 자기 식대로, 자기 생각대로 이해한다. 불교를 기복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기복이라고 말할 때의 복은 행과 불행의 행이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행과 불행을 떠나버린 행이다. 우리는 어리석어 법의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늘 착각 속에서 헤매고 있다.
이 모든 법이 공한 세계와 차원에서, 즉 깨달음이나 부처의 세계에서 보면. 쉬운 말로 악몽을 꿀 때 강도에게 쫓기고 있다면 그 강도에게 쫓기고 있는 그 꿈 안에서 꿈의 상태에서는 분명히 강도가 있고, 나는 두려움을 가족 있고, 도망을 가고, 구원을 요청하고, 관세음보살이나 나타나서 나를 구원해주면, 고마운 존재이다. 이것은 꿈속의 얘기다.
눈을 뜨면 “아, 꿈이구나. 꿈이구나.” 이것으로 끝난다. “꿈이구나” 이 말이 바로 제법공상, 이 모든 법의 진실한 모양, 참의 세계, 공의 세계, 공의 모습이다. 눈을 뜨면, 강도도 없고, 두려워할 일도 없고, 도망갈 일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일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다. 이처럼 존재의 본질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만 변화할 뿐이다. 여러 차원의 변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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