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2.04.11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어떤 문제든 대화의 목적이 가장 좋은 세제를 찾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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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는 최대한 객관성을 가지고 문제의 중요성을 판단해야 한다. 말을 꺼내기 전에 잠깐 생각해보고,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양쪽이 다 같이 '아니야' 대신 '좋아'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기계적인 반대편만 생기게 되는 것이어서 '좋아'는 '아니야'에 반대하고, '틀렸어'는 '맞아'에 반대하는 결과가 나오게 될 뿐이다.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과장하니까 나도 그렇게 하게 된다.

그래서 양쪽은 항상 서로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은 양쪽이 가까이 있으며 나의 의견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보조적인 것일 수가 많다. 내가 상대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문제에 관산 상대의 의견을 먼저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병든 사람과 건강한 사람에게 똑같은 음식을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2주도 안 지난 신생아에게 3개월 된 아이와 같은 양의 우유를 먹일 수는 없는 법이다. 갓난아이에게 숟가락을 준다고 먹을 수 없다.

상대가 대화 현장에서 얼마 만큼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주려 했다가는 그 사람은 도리어 조금도 받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밤까지 새워가며 서로 의견을 나누는 일이 있다. 어떤 사람이든 단순히 토론에 졌다고 자기 의견을 바꾸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순수하게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 상대에게 진리를 제시하기 위한 토론이나 대화라면 어떻게 출발해야 할까?

"상대가 틀렸음을 증명하겠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고, "나는 그 사람이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도록 돕겠다."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 흔히 상대는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할지라도 내가 말하는 진리는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수 있다.

왜 진리를 독점하려고 하는가? 진리는 우리 양쪽과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십중팔구는 우리가 진리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서 더욱 발견하기 어렵게 만드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진실로 토론에서 성공하려면 자신을 잊고 상대의 권리를 존중하자.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부자와 같은 거동으로 언행을 하면 안 된다. 도리어 함께 진리를 탐구하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종교적 진리에 관한 것일 경우에는 논리적으로 완전히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종교는 교리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은 진리이므로 토론의 제목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신을 우리 인생 속에 영접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사의 모든 사상과 이념도 이와 비슷하다. 대화는 진리를 증명함으로써 신과 대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오늘도 신록인 번지는 신비롭고 흥겹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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