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2.06.06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말이 많으면 공산당이거나 사기꾼"이라던 아버님의 말씀...내 인생의 지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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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많으면 공산당이거나 사기꾼"이라던 아버님의 말씀...내 인생의 지조가 되었다

나는 어릴 적 조용한 범생이였다. 범생이라기보다는 너무 뛰어난 우등생 형 때문에 항상 많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열등생이었다. 아버님께서 40대 중반에 늦게 본 큰 아들은 앞으로 집안을 이끌어갈 귀한 존재로 귀여움과 신뢰를 제대로 받았다.

세 살 어린 둘째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있으면서도 없는 듯한 존재였다. 자존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아이로 조용하고 시키는 대로 잘해서 범생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집에서는 주로 고양이, 개, 닭, 토끼, 돼지, 소 등 동물들이 내 담당이었다.

형처럼 우등상 한 번만이라도 받아보는 것이 마음 속 소원이면서도 공부는 웬지 체질에 맞지 않는 탓에 국민학교 졸업하기 전에 개근상이라도 한 번 타보자고 작심하여 노력한 끝에 개근상을 받았을 때의 그 기쁨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형이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그 시절에 의자 달린 책상을 사주었으나 나는 그제서야 형이 쓰던 앉은뱅이 책상을 물림으로 받은 상태인 집안 분위기 상 나의 기분과 성취감과는 달리 집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종이 쪼가리일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난 이후 점차로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개념이 국가주도의 국민 생활 정책으로 의식주 생활 속에 더욱 깊이 스며들면서 5일장 등이 더욱 활발해지게 되었는데, 우리 시골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그 시절 나오기 시작한 만화에 우연히 빠져 보려고 노력했지만, 돈도 없이 없어 뱀을 잡아 뱀탕집에 가져다 주고 받은 돈으로 만화를 사봤지만, 책방이 집에서 10리길을 걸어가고, 휴일에 사정하여 부모님 따라 가지 않는 한 내가 시장에 갈 이유가 없으니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도서관에 들어가 동화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야 이것이 바로 신비의 세상, 내가 마음 속으로 꿈꾸던 평화로운 세상 삶의 이야기'였다. 만화보다는 동화책이 질적으로 훨씬 좋았다. 더 좋은 것은 만화책처럼 '다음 편' 없이 그대로 한 자리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도서관 동화책 읽기였다. 밤새 읽어 대화까지 그대로 외워 등하교 1시간 길에 함께 가는 형동생들에게 들려주면서 제대로 된 인간 대접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시도한 첫 사업이 있었다.

5일장에 가서 연필, 공책 등 문구류를 사와서 1원인가 남기고 동네 아이들에게 파는 것이었는데, 동화책 등을 시장 책방에서 직접 구할 수도 있어서 너무 마음에 들어 열심히 사업을 했는데, 미래가 확 열릴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아버님께서 나를 불러 앉히고는 "사내 자식이 어릴 때부터 물건 팔아 남의 돈 빼 먹을 생각하지 말고, 말이 많아지면 사기꾼이나 도둑놈 된다며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일을 해야 한다."고 엄히 꾸지람을 하시면서 당장 다 치우라고 엄명을 하셨다. 눈물 나는 일이었다.

그 때 어린 내가 느낀 것은 돈을 생각하거나 이윤을 남기는 것은 사회적으로 훌륭한 일이 아니고 나쁜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정말 그 이후로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기는 했지만, 흥정하는 것은 믿음을 깨는 일로 여겨져 지금까지 전혀 못하고, 일부러 피하기까지 한다.

진료비도 자꾸 깍아달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아무리 보험으로 국가가 지정해준 가격표를 보여주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구하는 환자분들에게는 한 푼도 내지 말고 그냥 가시고, 앞으로는 다시는 오시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내가 봉사한 셈으로 친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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