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2.09.08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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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적 순간에 머물러 있으면서, 또 한 편으로는 흘러가는 상태''라는 기묘한, 서로 모순된 성격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지금이라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동일한 것이며, 끊임없이 지금 아님에로 진화해 간다.

항상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면서 이런 '멈추어 서 있음'과 '흐르기'의 통일이 현재 살아있는 것이 어떻게 가능해지는를 해명해야 하는 일이다. 특히 유동성은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주관성에 선행하는 초월적 현상이다.

초월적 주관성으로서의 의식을 하나의 흐름, 즉 시간적으로 연장 또는 확대되는 것이 근원이며, 유동성, 즉 흐르기에 의해 비로소 초월적 주관성으로서의 의식이 성립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시간적 연장으로서의 흐름과 여기서 말하는 흐르기는 엄밀히 다르다.

그러나 '흐르기'가 그러한 사태인 이상, 초월적 주관성의 입장에서는 '흐르기'가 흘러 가버린 후에 그것을 시간적 존재로서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데 지나지 않으며, '흐르기' 그 자체는 '선존재'로서 언제나 계속해서 '절대적으로 익명적'이다.

요컨대 근원적이고 수동적인 '흐르기'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둘째로, 살아 있는 현재는 '흐르기'에 의해서 끊임없이 나 자신과의 근원적 거리를 낳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계속해서 '동일하게 멈춰 서있다.

그러나 이런 동일성도 앞에서와 마찬가지 이유에서 초월적 주관성이 행하는 동일화의 활동에 의한 것일 수 없다. 인식하는 자아와 인식되는 자아를 통합하여 동일화하는 것이 아니므로 인식은 그것에 선행하여 살아있는 현재에서 완수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식에 선행하여 살아있는 현재에서 완수되어 있는 자기 동일성에 기초하여야만 비로소 나 자신에게도 되돌아 오는 것이 가능해진다. 즉 의식하는 자아와 의식되는 자아를 통합하여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미 선행하고 있는 항상성에 기초하고 있다.

인식에 선행하여 이미 살아 있는 현재에서 완수되어 있는 자기동일성에 기초하여 비로소 자기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 가능해지는 한계에서 인식은 자신이 의식에 기초하여 비로소 가능해지는 선의식적 존재의 종합 수수께끼를 풀 수 없다.

살아 있는 현재는 거기서 모든 것이 존재하는 초월적 주관성을 시간 흐름으로 구성하는 것이므로 나 자신이 시간적인 것일 수 없다. 만약 시간적인 것이라고 하면 그것을 시간적인 것으로서 구성하는 근원을 찾기 위한 무한퇴행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살아 있는 현재는 선시간적이자 비시간적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현재가 비시간적이라는 사태라는 인식은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항상성은 '현재 모습, 즉 현상'이라고 하는 바로 그 점에 의해 궁극적인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존재적 인식은 선행 의식적으로 살아있는 현재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현상학적 의식은 그 궁극적인 원천인 살아 있는 현재가 절대적 익명성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살아 있는 현재에서의 흐르기, 즉 유동성과 멈춰 서있기, 즉 항상성의 통일, 즉 자기 차이화와 자기 동일화의 통일에 기초하여 스스로의 인식이라는 존재성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알고는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는 여전히 성공하지 못한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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