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 생활은 무슨 일이건 그것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조화에서 오는 즐거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화나 절망을 깨부수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순리적인 이치나 지혜를 배우고 깨닫는 것이다.
깨어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이 지금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한다는 의미이고, 그런 사실을 알아차림으로써 현재 이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다. 내 마음 속에 생겨난 화를 억누르거나 맞서 싸우는 것과 다르다.
숨을 들이쉬면서 내 안에 어떤 화가 있음을 자각하고, 숨을 내쉬면서 내 안의 화에 미소를 보내는 것이다. 즉 마음 속 화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깨닫고, 그런 화를 어떤 것이든 자애롭게 있는 그대로 끌어안을 수 있는 능력이다.
비가 올 때 우산을 쓰면 내 호흡을 통해 몸 속의 차가운 공기를 내보내고 데워진 따뜻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고, 습기찬 방에 제습기를 돌리면 방안에 가득한 습기 속에 그대로 있을 필요가 없어지며, 내 호흡도 곧 편해진다. 두 공기 사이에 어떤 다툼도 없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마음 속 화를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화가 거기 있음을 자각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치 큰 형이 어린 동생의 고통을 억누르지 않고 보살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동생아. 네 곁에는 항상 내가 있단다.'라고 말하면서 어린 동생을 품에 안고 달래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알아차림의 훈련이다. 통상 팔정도의 정념(正念)을 가리키며, 마음챙김(mindfulness)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은 정념을 마음으로 다섯을 세며(사띠) 짧게 숨을 들이쉬고(아나), 마음으로 다섯을 세며(사띠) 길게 숨을 내쉰다(파나). 숨이 바뀔 때 넷이 되어도 여섯이 되어도 안 된다고 가르치셧다. . 따라서 고도의 정신집중(사띠)가 필요하다.
이러한 숨을 세는 명상이 익숙해지면, 모든 번뇌를 벗어나 누진통을 이루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아기가 울거나 밥을 먹지 않거나 잠을 자지 않는다고 때리는 유아원 선생님들이 있다면, 자신이 아기와 한 몸임을 깨닫지 못한 무책임한 사람이다.
'분별심을 내지 마라'는 말은 생각과 욕구를 개입시키지 않고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기만 하거나 비판단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으로 아무것도 개입시키지 않고 오로지 순수하게 깨어서 경험되는 의식 경험을 바라보며 인식하는 것이다.
아기가 칭얼거리는 것은 뭔가 불편하고 화가 난다는 의미이며, 그런 아기를 돌보는 사람은 누구든 아기의 어머니처럼 아기를 달래야 한다. 명상 수행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맞서지 않고 끌어안아서 변화시키는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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