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밤
삭막한 아파트 생활이란 땅을 밟고 사는 즐거움이 있을 수 없다. 봄에 움트는 대지의 작은 수런거림에 귀대여 보는 그런 파릇함도 없다. 어쩌다 가지 끝 파란 눈빛들과 깜짝 마주치어 초록초록 웃어대는 그런 천진무구함도 없다. 그저 계절의 뒤 바뀜을 느끼는 것은 그 계절이 한참 동안 아파트 주위를 서성거린 뒤에야 느낀다.
생각해 보면 도시 생활이란 참으로 서글프다. 도시의 한 복판은 차들이 능구렁이처럼 꿈틀대고 빌딩은 또 내 목뼈를 부러뜨린다. 부러진 목뼈 사이로 더운 바람이 한바탕 불어대면 여백 없는 공간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더 목을 조인다. 하늘엔 구름한 점 없는 도시,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그저 또 내일인 도시...목이 마른다.
우리는 이 도시를 왜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언제 꽃이 피고 지는 지도 모르는 사이에 계절은 벌써 무더워 지는 이 도시를 무슨 망령이 들어 고집스럽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돌아서면 다 망각인 것들, 버린 만큼 가벼워지는 마음 밖으로 아파트 화단에 핀 목련이 환하다.
목련은 밤에도 하얗다. 잎보다 먼저 피어난 목련은 화사한 시포(屍布)에 둘러싸인 망자의 넋처럼 고귀하고 아름답다. 작년에는 나무가 작아서 인지 피지 않았으나 오래된 기억이라도 찾아 낸 듯, 화사하다. 누가 심어 놨는지는 모를 일이다. 삭막한 아파트 화단 저 목련 한그루가 그나마 시원한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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