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음(煉煤)에 대하여』
김재남
천성이 게으른 탓에 느린 기차를 타고 들판을 달리다 보면 어디가 시골이고 어디가 도시인지 그 경계가 모호함을 느낀다. 불쑥불쑥 튀어 오른 아파트며 별천지 같은 모텔들은 마치 땅을 점령한 장수처럼 그 당당함에서 오랜 추억의 시골 정감을 잊는다. 특히 초가집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빼앗기는 것이고 한 공간의 추억마저 철거해버리는 지극한 뼈저림 같은 것이다.
좀 오래 된 이야기지만 내 어린 시절의 시골 모습은 아담한 초가집들이 대부분이어서 어느 집을 가거나 구조는 큰 차이가 없었다. 대부분 안방은 빛 바랜 벽지가 아무렇게나 발라져 있었고 천장 모서리마다에는 밤새 등잔불에서 나온 그을음들이 우리와 함께 커가고 있었다. 안방 옆에는 곡식을 가둬 놓은 어두운 광이 오랜 빛을 차단한 채 쥐며 거미들을 튼실하게 살을 찌웠고 하얀 벽은 이미 어디가 천장이고 어디가 벽인지 조차 분간할 수 없이 그을려 그들에게는 더 없는 아방궁을 제공하였다. 또한 집집마다 작은방은 으레 하나씩 딸려 있었는데, 시골이라는 것이 어디 읍내가 가까운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문밖 어느 네온 빛 야음에 하룻밤 쉬어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손님이 오면 천상 작은방에서 유숙케 했다. 작은 방과 안방 사이에는 어느 집의 경우를 보나 정재가 있었다. 정재는 검은 색 일색이었으며 가마솥 1개, 작은 솥 1개가 딸린 부뚜막이 대부분이었는데 그 옆으로 검게 그을린 목탄 빛 살강이 웃자란 형의 키만큼 벽에 기대어 서 있어 나는 키가 작아 늘 꼭지 발로 그릇을 꺼내곤 했다. 때로는 저녁 해거름에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연기의 양을 보면 대충 그 집 식구들 수를 어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좀 못 사는 집은 장작도 없었기에 생 솔가지를 간혹 피워 식구수 보다 더 많은 연기를 피워 올리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연기는 정재며 살강의 빈 그릇이며 작은 방이며 안방 지나 광 안에까지 가득 채워져 온 집안이 그을음투성이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그을음 때문에 무슨 병이라도 들어 금방 죽을 것만 같지만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은 그 그을음이 주는 평온과 여유와 넉넉함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을음은 더러움이 아닌 자연의 빛이요 은은함이라 생각한다.
요즘 아파트 생활이라는 게 동선이 짧아 편리한 것 같지만 정신적으로는 편안하지 못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씻고 닦고 걸레질을 해대는 통에 마루며 방이며 책장이며 반질반질 하여 몸은 편히 쉴지 모르나 마음은 허둥댄다. 그러기에 나는 건축술을 배워 서울 한복판에 초가집식 아파트를 지어 꺼억꺼억 그을음 피우며 불티나게 팔아 볼 참이다.
|
다음글 : 
이전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