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2.09.04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5귀절 반야심경 43-3]무색무수상행식(無色無受想行識): ‘없다’고 하여 생활 속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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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귀절 반야심경 43-3]무색무수상행식(無色無受想行識): ‘없다’고 하여 생활 속 모든 것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 어디에도 집착할 만한 것이 없다

공(空) 가운데는, 즉 공(空) 그 자체에는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없으며, 그 무엇도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기에 ‘본래무일물’이며, 그 자체도 역시 공(空)하기에, ‘공공(空空)이며, 그 어떤 모습이나 상이 없기에 ‘무상(無相)이며, 그 어떤 작용도 하지 않기에 ‘무원(無願)’이다.

공(空) 그 자체에 뭔가 있다고 여긴다면, 그건 공(空)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해탈이란 실체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달을 때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집착할 만한 게 없음을 알게 될 때, 마음은 쉬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새김을 확립하여 아무 것도 없는 경지를 지각하면서, 나아가 ‘없다’에 의존하여 거센 흐름을 건너라." "아무 것도 없는 것에 의존해서 모든 것을 버려라." 공(空) 그 자체에 뭔가 있다고 여기고 집착하면 부처님도 제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집착의 최종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자아라는 무명은 기필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 뭔가를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한다. 이 무명 혹은 무지를 파괴시키는 것이 바로 공(空)의 지혜이다.

공을 깨달으면 일체 모든 곳에서 일체 모든 곳에서 물듦이 없으며, 색수상행식을 배제하지 않고도 모든 마음을 다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다. 일체 모든 모양도 세울 것이 없으며, 큰 거울이 모든 물건을 다 나타내 보이지만, 거울 속에 물건의 자취는 남지 않는다. 그런 것이 큰 신통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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