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떠나고 싶다.
-J에게
떠나고 싶다.
소리 없이
바람만큼 조용히
그 만큼
마음 닫고
소리 없이 조용히
떠나고 싶다.
이 시는 먼저 깊이가 없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마치 대가의 작품을 흉내 내 보려는 어설픈 시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연에서 화자는 어디론가 떠나기를 희망합니다. 그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화자는 바람이라는 또 다른 이미지를 차용하여 떠남의 아이러니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대로 1연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2연입니다. 1연에서 떠남을 가볍게 터치하고 넘어 갔다면 2연에서는 분명 그 떠남의 내적 이미지를 한 번 더 은유적 기법으로 묘사하여 존재와 떠남의 이중적 구조 즉 서로 상충된 이미지를 충돌시켜 화자의 떠남을 보다 구체화 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2연에서 보다 더 깊이 있게 치고 들어 갔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러므로 이 시는 언 뜻 보기엔 시처럼 보이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내용이 별로 없는 그저 몇 단어 나열 한 것뿐이라 하겠습니다. 1연의 떠남, 2연도 별 의미 없이 그냥 떠나는 단어만 나열된 뒤 어설픈 수미상관으로 마무리... (2연의 긴장감 또는 떠남의 이미지를 역설적 표현 미숙)
그러나 여기서 다소 주지할 것은 시어를 다루는 솜씨가 그냥 어깨너머로 배운 동네 수준은 아닌 듯 합니다. 이 작품을 보다 더 정확히 말 한다면 시를 쓸 줄은 아는 것 같은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직 깊이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 시는 작자 미상입니다.
2.
갈증이며 샘물인
-J에게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갈증이며 샘물인
샘물이며 갈증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이 시는 두 개의 명제 즉 ‘너는 갈증이며 샘물이다’와 ‘너는 내 속에 샘솟는다’가 단순한 것 같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는 시적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몇 안 되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겹치고 충돌하는 고도의 시적 장치가 갈려 있다 하겠습니다. 먼저 이 시는 갈증과 샘물 사이 즉 너라는 대상으로 하여금 나는 갈증과 샘물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 반복을 느끼며 곧 너는 나의 우주요 전부인 동시에 내 공간의 일탈을 붙잡아 두는 또 다른 집착적 자아의 경계를 무의식의 감금으로 짓누르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2행과 3행의 모순어법적 행갈이는 너라는 존재의 이미지부각과 너를 향한 나라는 또 하나의 이미지를 숨 가쁘게 대립시켜 긴장감을 준 뒤 6,7행에서는 짧게 행갈이를 하여 다소 느슨한 시적 호흡을 준 것은 고도의 시적 창치라 하겠습니다. 또 하나 여기서 눈 여겨 볼 것은 몇 단어 안 되는 이 짧은 시에서 첫 행과 마지막 행을 소위 수미상관으로 처리했음에도 이미지의 확장은 가히 우주적이요 내용 또한 심오하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별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하면서 그렇다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작품성이 매우 뛰어난 시입니다. 이런 시는 한번 쓱 볼 것이 아니라 천천히 여러 번 읽어야 이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또렷이 보입니다.
이 시는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이며 시인이신 정현종님의 작품입니다.
이상 말이 되거나 말거나 순전히 내멋대로 시평을 했습니다.
말이 안 되더라도 용서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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