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은 올해의 첫 절기이며, 봄의 시작을 알리는 날입니다.
앞으로 거의 2주 간격으로 봄비가 내리는 우수, 개구리가 동면에서 나오는 경칩,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 농부들이 봄농사를 시작하는 청명을 지나 농사비가 내리는 곡우까지 약 90일 정도가 봄절기에 해당합니다.
오늘부터 15일간이 입춘절기입니다.
절기는 태양년에 따라 정하기 때문에 입춘이라 해도 음력으로는 아직 섣달이요 봄은 멀고 추위는 매섭지만, 이제부터는 얼음장 밑으로 물이 흐르고 땅속에선 생명이 꿈틀꿈틀 서서히 기지개를 켤 것입니다.
입춘부터는 북서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하고, 차츰 따스한 기운이 바람에 실려와 언 땅을 녹이면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깨어나게 됩니다.
옛 풍습에는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해의 마지막이라 했습니다. 따라서 이 날 밤을 해넘이라 부르며 잡스러운 기운을 집안에서 내몰고 깨끗한 입춘(새해)을 맞고자 집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하던 풍습이 있었지요.
사람들은 입춘이 되면 봄이 오고 있음을 설레는 마음으로 반겼고, 그런 기대가 곧 입춘첩(立春帖)이니, 옛 사람들은 손수 새로운 글귀를 짓거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봄을 축하하며 가족의 기원을 담아 집안의 기둥이나 대문, 문설주 등에 고루 붙였지요. 이를 통칭 '입춘첩(立春帖)'이라 합니다.
아침 햇살이 부스스 마루 위로 깊숙이 스며들 때, 집안의 안녕을 비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 집기둥이나 대문에 처억 달라붙는 것이지요.
또한 봄이 되면 집안에 기어들어 겨울을 보내던 뱀들이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 청사(靑蛇), 백사(白蛇), 살모사(殺母蛇) 등 이름을 써서 여기저기 거꾸로 붙였는데요, 뱀이 집안의 기둥이나 벽을 타고 오를 때 밑에서부터 읽게 되니 거꾸로 붙여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에서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뱀이 놀래서 집안으로 범접치 못했을까요? ^!^ 또한 모아두었던 머리카락을 마른 고춧대와 함께 묶어 태우며 집안 여기저기에 스며있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기도 합니다.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 지기를 빈다.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百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란다.
-거천재 래백복(去千災 來百福): 모든 재앙은 물러가고 복 많이 들어오기를,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나라는 태평하고 국민은 편안하여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소서,
-천재설소 만복운흥(天災雪消 萬福雲興): 모든 재앙은 눈처럼 녹아 없어지고 모든 복은 구름처럼 일어나소서.
등등 얼마나 듣기 좋고 복스럽고 정감이 가는 말들인지.....!
또한 입춘이나 대보름 전에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꼭 해야 일 년 내내 액(厄)을 면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의 민속도 있었습니다.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거친 길을 곱게 다듬어 놓는다든지, 다리 밑 거지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동네에서 몹시 가난한 집 문 앞에 끼니거리를 살짝 놓고 온다든지 등등을 실천하는 미풍양속이었다. 마치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처럼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몰래 좋은 일을 하는 심성이 인정 넘치는 동네를 이루는 바탕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워 삶에 지친 이웃이 많을 때면 옛 사람의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을 실천함이 어떨까요?
입춘날 먹는 시절음식으로 오신채(五辛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다섯 가지 매운 맛이 나는 나물을 말하는데, 지방에 따라 나물 종류가 약간 다르나 다음 여덟 가지 나물 가운데서 오방색에 해당하는 노랗고 붉고 파랗고 검고 하얀 색이 나는 다섯 가지를 골라 무쳤습니다. 파, 마늘, 자총이(紫蔥이: 껍질이 누런 자줏빛이고, 파보다 더 매운 파의 일종), 달래, 평지(유채), 부추, 무릇(파, 마늘과 비슷한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 그리고 미나리의 새로 돋아난 새순이 그것들이지요.
노란색(중앙을 나타냄)의 새순 나물을 가운데에 놓고, 동서남북에 청, 백, 적, 흑의 사방색(四方色) 나물을 차려 내어 임금과 신하가 나누어 먹기도 했는데, 이는 임금을 중심으로 여러 신하가 사색당쟁을 멀리하고 정치화합을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일반 백성들도 오신채를 나눠 먹으며 가족의 화목을 담고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을 북돋으려 하였지요.
삶에는 다섯 가지 괴로움이 따르는데, 다섯 가지 매운 나물을 먹음으로써 인생오고(人生五苦)를 잘 참고 이겨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옛말에 오신채에 기생하는 벌레는 고통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참고 견디는 정신을 길러주는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지루한 겨울을 벗어나 톡 쏘는 오신채라는 절식을 해먹었던 것은 한 해를 새롭게 출발하기 위한 청량제, 자극제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할 것이니, 오색(五色)의 미학과 오상(五常)의 철학과 오고(五苦)의 인생을 담았으니 가히 나물의 으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즐겁고 건강한 하루 만드시길 빕니다.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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