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귀절 반야심경 44-8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육근이 없다는 말은 존재하되 존재감이 없다는 말이다: 공 그 자체에는 그 무엇도 없다
겨울 눈 속에 하얀 백로가 앉아 있어도 우리는 알지 못하고 지나치다가, 백로가 놀라 날아갈 때 비로소 겨우 알아차리게 된다. 안이비설신의(눈귀코혀피부생각), 이 6개의 문이 모두 하나의 관문이다. 5개의 문에 다시 울타리 칠 이유가 없다. 저 세상(속세)의 일을 따라가면 분분히 어지럽지만, 집 안의 아버지(본성)는 언제나 편안하다.
직접 보더라도 뭐든 그릇된 것이 보이면, 우선 자기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해야 할 판인데, 보지도 않고 들은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의 귀가, 자기의 눈이, 자기의 코가, 자기의 온갖 감각기관이 오히려 자신을 도둑질하는 줄도 모르고 헛소리들을 해대는 이유다.
공(空) 자체에는 그 무엇도 없는 것이 그저 당연한 사실일 뿐이지, 부정이 아니다. 우리가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오온, 바로 색수상행식의 다섯 가지이다. 그러므로 오온이란 나 자체를 분석한 것이다. 육근이나 육경, 또는 육식이란 나와 내가 접촉하는 모든 바깥 대상을 동시에 분석한 것으로 나와 세상을 말한다.
오온도 공하며, 육근도 공하며, 육경도 공하며, 육식도 역시나 공하여 어느 하나 실체가 있는 것이 없다. 실체가 없다는 말은 사실 모두가 다 거짓이란 이야기이다. 인연화합으로 생겨난 모든 것에는 실체가 없으므로 사실상 딱 까놓고 보면 거짓이지만, 중생은 그런 연기법의 실체를 몰라서 모든 걸 진짜로 여기게 된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보여지는 대로 진실한 게 아니다. 만약 진실하다면, 고통이 당연히 없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갖 고통이 휘몰아치고 있다. 왜냐하면, 진실한 것이 아님에도 그걸 몰라서 진실이라고 여기고 집착하는데, 결국은 진실하지 못하니 그 모든 것이 사라져서 잃게 되므로 그렇다. 우리 몸도 마음도, 그리고 세상도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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