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3.01.16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5귀절 반야심경 46-2]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공 그 자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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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귀절 반야심경 46-2]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공 그 자체에는 眼界도 없고 意識界까지 없다: 인연화합으로 생겨나는 우리의 삶은 6식이건, 7식이건 8식이건 모두가 공한 것이다

불성이라고 여기는 암마라식도 역시나 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불성도 역시 마음이기 때문에 암마라삭(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암마라식(識)은 불생불멸식(識)이기 때문에 불성이라고 부르지만, 거기에도 실체라고 여길 만한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불경이 참으로 헷갈리는 것이 바로 마음이란 것 때문이다. 의미에 따라 불성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생멸하는 마음이라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불성(불생불멸식)이건 생멸식이건 거기에는 실체라고 여질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본성은 그냥 미지의 신비한 느낌일 뿐이다. 삶을 향한 사랑의 초월감이다.

공(空)을 불성(佛性), 법성(法性), 진여(眞如), 여여(如如)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반야바라밀에 포함된다. 소승 불교나 대승 불교를 막론하고 해탈의 문은 바로 공(空)이며, 공에는 실체라고 여기고 집착할 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으므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래서 공 그 자체에는 18계도 역시 없다. 그래서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이다.

우리 마음은 고요함 속의 하늘과 땅과 같아서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얻어온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이런 지극한 고요함 속의 삶을 의미한다.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요한 삶 그 자체에 빠져 있는 것이다. 고요함 속에서도 움직이고 할 것은 자유자재한 상태를 의미한다. 햇빛은 자의적으로 어떤 곳은 비추고, 다른 곳은 비추지 않는 것이 아니다.

빛이 비추는 것 자체가 그냥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것이지 일부러 생각하여 비추는 것이 아니다. 달은 치고 기우는 일도 있지만, 우리 마음은 달과 달리 오히려 태양과 같아서 기름이 필요 없는 등잔불처럼 천지 사방을 환하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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