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유진이에게서 아버님과 상일이가 지리산 등반을 하기로 했다며 같이 갈 생각이 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학 2학년때 선배랑 1박2일 종주를 한 적이 있는터라 솔깃하긴 하였으나 힘들게 등반한 기억도 있어 선뜻 참여하리라 확답하지 않았습니다. 이틀이 지난 다음에 식구들이랑 가까워질 기회이겠구나 싶기도 했고 지리산을 다시 만난다는 설렘에 유진이에게 가겠다고 전했습니다. 아쉽게도 예약을 이미 마쳤다 그러더군요. 제가 좀더 서둘러 말했었야 했는데 괜히 뜸들이다가 좋은 기회를 놓친 거 같습니다.
1차 시험이 끝나고서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으려고 함께 공부하는 친구랑 북한산을 오른 적이 있습니다. 북한산도 역시 초행길은 아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친구녀석은 처음이라 제가 안내도 겸했었죠. 처음 갔었던 때는 겨울이었는데 당시 그리 힘들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 하물며 늦봄의 북한산은 더욱 쉽게 등반할 수 있겠지란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등산화 대신 테니스화를 신었고 긴팔옷도 준비하지 않았고 간단한 음식도 없었습니다. 역시 신발이 말썽이었습니다. 밑창이 미끄럽다보니 바위에 오를때마다 다리에 힘을 많이 줘야 했고 그래서 금세 지쳤습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온도가 낮아지기도 했거니와 땀이 바람에 마르면서 체온이 떨어져 친구녀석의 긴팔옷을 빌려 입기도 했습니다.
어렵사리 백운대를 오르고서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습니다. 나름대로 등산을 좋아한다는 녀석이 산을 우습게 알고 준비없이 올랐다가 된통 당하는 구나. 산이 해이해진 저를 정말 다잡아주는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이래서 산을 좋아하는가 봅니다. 높은 산을 오른다는건 인생에서 어떠한 목표를 이루어내는 과정의 축소판인거 같습니다. 산에 대한 조사를 하고 일정을 잡고 코스를 정하고 필요한 장비를 점검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그렇게 등반을 시작하면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스스로를 이겨내야하고, 정상에 오른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등산은 제가 지금 직면한 인생과 많이 비슷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쉽습니다. 더욱이 지리산은 오르는 도중에 여러 봉우리가 있고 그 경치도 장관이라 정상에 오르기 전이라도 여러 번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산이어서 아쉬움이 큽니다.
다음에는 꼭 함께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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