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3.02.20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알아차린다는 말은 희로애락의 감정과 거리를 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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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열심히 꿈꾸고, 배우고, 노력하여 삶을 완성하자."고 스스로 또는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받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지혜나 깨달음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지만, 배움이나 지혜, 또는 깨달음은 어느 정해진 기준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완성을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이 영원히 이어질 뿐이다. 그런 배움이나 깨달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라는 것은 결국 한 마디로 간단히 말하면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 즉 화가 나거나 슬플 때 '지금 화가 나거나 슬프하고 있다'고 알아패는 것이다.

이 말이 왜 그렇게 중요한 지혜가 되는지, 그것이 왜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관계가 깊은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호한 인상만 받을 뿐 그대로 지치고 만다. 매 순간순간에 무엇을 느끼는지, 어떻게 느끼는지 아는 자각이다.

그런 자각들이 모이고 다듬어져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깨달음의 지혜들이 된다. 그런 깨달음들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그런 깨달음의 지혜만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와 세상 사이에 만들어져 있는 어떤 조건 지어져 있는 상황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다. 강한 집착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스스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그런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런 반응적 삶을 그만두지 못한다.

나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에 대한 '자각'이 없기 때문이다. 즉 어떤 감정을 느기고 있으면서도, 자신만 그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즉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고통의 원인이다.

내가 사회 조직에서 부당한 대우나 취급을 받았다고 무의식적으로 여겨질 때, 순간적으로 화가 난다. 기쁠 때도 그렇다.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뭔가 기뻐한다. 그때는 '나는 기뻐하고 있다'는 의식이나 자각이 없다.

기쁨과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감정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그 감정과 하나가 되어 있다. 화가 나거나 슬플 때도 그런 감정과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화가 나거나 슬프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배우거나 깨닫거나 알아차리는 것, 즉 아는 것은 곧 자각이며, 자각은 어떤 대상과 하나가 되어 있을 때는 불가능하다. 내가 화 자체가 되어 있는 데, 내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편안하고 즐거운 것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런 감정적 상황, 즉 기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편안하고 즐거운 감정에서 몸이 빠져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런 감정들과 거리를 두고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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