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무소주(應無所住)하니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
불가(佛家)의 가르침 중에 ‘머무는 바 없이 머문다(應無所住)’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말이 아닐 것입니다. 시간의 화살을 타고 날아가는 존재는 머무를 데가 없습니다. 머무르는 순간, 시간을 놓치는 것이고 시간을 놓치면서 삶은 자기 궤적으로부터 일탈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놓친 그 모든 행위는 업(業)이 되고 ‘무거운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한 것이기 때문에 매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을 ‘머무는 바 없이 머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귀한 가르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여 엄청난 세월을 회한과 번민, 안일과 체념속에 묻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이 가르침은 일단 주로에 나서면 머무를 곳이 없이 시간과 다투는 마라톤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인데 그렇게 달리고도 그 뜻을 제대로 깨치지 못했습니다.
지난 6월 12일 박사학위 논문 최종심(3심)을 통과하였습니다. 1996년, 박사과정에 입학한지 12년, 1999년 과정을 수료한 지 8년, 초로(初老)의 나이에 드디어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난 2000년에 논문 예심을 통과하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논문에 사용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모두 유실하여 포기했다가 유효기간이 지나버려 논문제출자격 종합시험을 다시 치르는 우여곡절도 겪었습니다. 사실상 논문을 두번 쓴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서야 학마(學魔)의 사슬에서 잠시 풀려났습니다. 평생을 학인(學人)으로 살아가야하는 운명이라고 체념하며 스스로 위안을 찾기도 하였지만 공부는 때가 있다는 진리를 절감했습니다. 다만,내 인생의 큰 업(業)을하나 소멸시켰으니 마음은 홀가분 합니다.
사실 박사라는 타이틀이 이제 홀로 어떤 분야의 연구를 해도 좋다는 일종의 면허같은 것인데 어느 덧 중년의 하오를 훌쩍 지나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를 생각하니 본격적인 연구를 할 시간이 얼마 남지않은 것 같아 그것이 무척이나 애석합니다. 삶에 시달리느라 심하게 감가상각당한 몸과 마음의 얼마남지 않은 내용연수(耐用年數)를 생각하니 더욱 아득합니다. 많은 주자들이 반환점을 돌아 속속 피니쉬 라인을 넘고 있는데 이제야 겨우 스타트 라인에 선 느낌입니다. 그래도 그동안 체득한 '마라톤 정신'에 몸을 맡기고 "머무는 바 없이 머무는"길을 찾아 떠나야겠지요.
핑계같지만 그동안 마라톤을 제대로 하지못했고 이곳에도 자주 들리지 못했습니다. 달리지 못하는 일상이 쌓여 갈수록 죄의식도 깊어갔습니다.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제 큰 업을 하나 내려놓았으니 다시 신들메를 고쳐매고 '달리는 일상'을 복원하려합니다.
변변찮은 만학의 성취에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이동윤 원장님, 양경석 변호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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