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주의 그리스 철학에서는 진리를 약과 같이 여겨 신중하게 조절된 양을 '환자'에게 처방해 주었는데, 최근까지도 의료계에사는 진실에 대한 이와 비슷한 접근법을 표준으로 여겨왔다. 의사들은 너무 많은 진실이 환자를 잠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환자와의 소통에 진실을 회피 또는 공개하지 않고 은폐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환자는 무지한 상태로 관리하고, 의사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효과적인 의료 관행에 필수적인 동시에 직업적 권위와 신비를 유지해 줄 수 있다는 일반적 생각이었다.
그런 비밀 유지와 투명성 부족은 의사의 자신감 부족, 실수, 무지를 덮어버리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의사들은 어떤 환자의 상태에 관해 진실을 말한다 해도, 가까운 직계 가족에게만 말하고, 환자에게는 전하지 말라고 강권하곤 했다.
이런 태도가 바뀐 것이 우리 나라의 산업개발 시대가 본격적으로 확대되던 1970년대였다. 의료 보험 제도가 도입되면서 의료 윤리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의료 소송의 증가로 고지 후 동의가 의료 관행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았다.
고지 후 동의에는 우리가 정보를 불편부당하게 평가한 뒤에 그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행복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합리적 주체라는 가정이 깔려있다. 그만큼 개인의 인권에 대한 개념이 신장되고 발전되었다는 의미다.
특정한 행동 방침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그 잠재적 결과에 대해 모두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 의존하고 있다. 고지 후 동의 개념은 의료 분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오남용 사례 때문에 등장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악명 높은 것은 나치 독일이 유태인 강제 수용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학 실험이었다. 최근에는 속임수나 강요 때문에 의학 연구에 참여하거나 돈을 받고 신체 장기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적용될 절차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고지를 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유엔을 통해 전세계에서 밝혀지고 있다. 수감자, 소수자, 빈민, 권리나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대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구만이 아니라 치료에서도 도입되고 있다.
고지 후 동의가 환자-전문가 관계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으며, 환자-의사 관계에서 전통적으로 내재한 온정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 환자의 자율성 확대를 요구하는 운동가들도 지지를 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의료윤리학자들은 고지 후 동의의 법적 또는 실제적 구성 내용의 문제를 포함해 많은 쟁점을 다루었지만,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도록 이끄는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기제나 가끔 그런 결정을 내리는 책임을 무조건 떠안으려 하지 않는 사실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고지 후 동의와 관련된 논의는 환자가 무지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동의 양식을 발행하는 쪽에서 환자가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공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법적으로는 서명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치료 전에 환자가 의사나 병원의 실적에 대한 정보를 얻을 권리가 제한되어 있거나 왜곡 또는 회피할 수도 있지만,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권리가 환자에게 있다는 것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나마 환자가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신뢰적이고 긍정적 효과는 부인할 수 없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5월 마지막날 만끽하세요.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