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3.07.16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5귀절 반야심경 49]내지무노사(乃至無老死): 이미 무명이 없어져 다하면 죽음 또한 없어
+ 파일첨부 :

[5귀절 반야심경 49]내지무노사(乃至無老死): 이미 무명이 없어져 다하면 죽음 또한 없어진다: 이미 몸이 없는 데 생사가 어디 있겠는가?

이미 형상이 없어졌는데, 다시 무슨 근심 걱정이나 괴로움, 생노병사의 괴로움 같은 것이 있겠는가? 수행하는 사람은 몸뚱이도 잊고 모양도 잊어야 한다. 내 몸이 없는데 무슨 무명이 있겠으며, 무명이 이미 없어졌으므로(그 이치를 깨달았는데) 생사 또한 끊어진다.

부처는 자신을 보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지견이다. 안으로 마음을 보면 마음에는 그 마음이랄 것이 없고, 바깥으로 형체를 보면 형체에는 그 형체랄 것이 없으며, 멀리 사물을 보면 사물에도 사물이랄 것이 없다. 이 세 가지를 깨달은 사람만이 오직 공함을 볼 수 있다.

금강경에 “만일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으면 바로 보살이다”라고 하셨으니, 만일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다면 보살이라 말할 수가 없다. 누구든 '아상' 즉 나라는 생각, '인상' 즉 살아 있다는 생각, '중생상' 즉 어느 하나라는 생각, '수자상' 내가 한 사람이라는 생각, 이런 생각을 일으켰다면 벌써 바른 생각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겉모습이야 이러저러해서 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어떤 실체가 없어 공하기에 볼만한 것이 그 무엇도 없다. 잘난 척할 그 나도 없어서 볼 수 없고, 외부에도 그 어떤 실체라는 것도 없으며, 탐진치에도 역시 그 어떤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어 보여지는 것이 없이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다. 일체가 공하기에 그렇다. 이것이 바로 혜안, 즉 지혜의 눈이다.

우리 마음은 본래 해탈과 열반 경지에 도달하여 있지만, 다만, 그 시실을 우리의 무명에 중독된 마음이 모를 뿐이다. 본래 우리의 마음은 공(空)한데, 중생은 마음에 그 어떤 뭔가, 즉 ‘나”라는 실체적 존재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수행이란, 이 착각, 즉 전도몽상을 부숴나가는 것이지, 본래 없는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인과의 실상이 공(空)이라, 윤회의 실체가 바로 열반이다.

다음글 : [5귀절 반야심경 49-1]내지무노사(乃至無老死): 이미 무명이 없어져 다하면 죽음 또한
이전글 : 아이들은 스스로 감정적 성숙을 이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