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3.07.24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어떤 인생이든 최후의 순간만 놓고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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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님들은 조선 시대에도 서원, 사찰, 계, 두레와 같은 시민 사회를 통해 상호 신뢰를 쌓아 사회적,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함께 효과적으로 대처해왔다. 신뢰한다는 것은 상대가 스스로 어떤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수 잇다고 믿는 것이다.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은 문화적으로 고유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치경제적 역사와 상황의 파생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에겐 '신뢰'와 같은 여유를 부릴 겨를이 없다. 그렇다고 신뢰가 없어 가난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뢰의 조건은 상대의 말과 행동에 '좋은 의도'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겉으로 나타나는 언동에는 악의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좋은 의도가 있다고 믿어야 대인관계도 좋아질 수 있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숱한 결함에도 절제적이고 엄격한 개인적 생활양식을 지켰고, 경제적으로 한국을 어디로 이끌어 갈지에 대해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정실적이었고 상당한 정도로 부패를 용인했다.

그러나 다른 개발도상국들에 비해 합리적인 수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돈을 낭비하지 않았고, 기업가들이 스위스의 별장이나 리비에라에서 장기간의 휴가를 즐기는 데 자금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박 대통령은 혐오스러운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를 수립한 독재자이긴 했지만, 남북한의 이념적 적대적 대결환경에서 경제적 지도자로서 훨씬 훌륭한 일을 했다.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은 강력한 경제적 권한을 가졌더라면 아마도 대재난을 초래했을 것이다.

만약 박 대통령과 그의 경제 관료들이 그들의 확신대로 유용한 경제 정책을 펼치기보다는 소모적인 정략적 정책을, 그리고 수출지향적이 아니고 단순히 소비지향적인 정책을 폈거나 부패했었더라면 오늘날 한국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의 많은 잘못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스스로 절제하는 스파르타식 삶을 살아왔고, 한국 경제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할지 정확한 방향을 제시했었지만, 집권기에 형성된 정경유착은 심각하고 좋지 못한 관행을 고착시키기도 했다.

대한한국의 경제 발전은 애초부터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냥 군사작전식으로 강하게 밀어붙여서 이룬 것이다. 개발독재가 훼손한 사회적 신뢰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우리 사회는 신뢰가 약해서 잘 되긴 어렵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전후 맥락이 맞지 않게 된다.

다른 사람에 관한 일은 오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자기 자신에게만 좋은 의도로 진행해서는 유감스럽게도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산업화 시절에는 왜 이렇게 해달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섭섭해하기보다 '지금'하는 말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다고 믿으라 하면, 악의에 찬 언동에서도 구태여 의도를 찾아내려는 의미로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보다는 좋은 의도는 사이좋게 살아가려고 마음을 먹을 때 비로소 보이는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의식적인 발견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 때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지 않고 지금 와서 불평하는 식의 말이어서는 곤란한 일이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살아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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