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고 복잡한 일상의 삶들 속에서 환상이 우리의 현실 인식을 형성하기도 하며, 때로 현실 검증이나 자신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는 해석에 대한 방어막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진실이나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인식 변화가 어려운 이유다.
부인과 무지는 사람들 사이의 인간관계가 성공하고, 그것을 지탱하는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할 때 보통 작동한다. 그러나 의도적 무시의 사례들 중에 우리는 현실에 눈을 감거나 일어나지 않는 일을 상상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것이 시실인 척하는 사람을 보기도 한다.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어떤 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살아갈 때가 있다. 그것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
사랑하는 젊은 남여나 부모와 자식 간에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 증거를 갈망하기도 한다. 거짓 행동은 자신이 상대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의 증거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만족스럽고 삶을 긍정하는 답을 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자멸의 문을 여는 답을 할 수도 있다. 서로의 존재에 대한 신뢰가 무시되면 신체적으로 상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될 수도 있다.
서로를 무시하고 거부하게 된다. 상호간에 대화가 없어지고, 정해진 호칭만으로 부르기를 고집하면서 감정적 연결을 부인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의 고통을 무시하고, 때로는 징벌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고, 스스로 그런 현실에서 사라지고 싶어하게 된다. 일상의 사회적 인간관계에서 무시하고 무시당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관계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사랑과 관계 형성에서 분명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지식을 찾고 있다고 말은 하면서도 사실은 내면적으로 그것을 피하고 무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도 한다. 무시와 극기는 인간관계에서 완벽하게 다듬어야 할 궁극적 기술로 여겨지기도 한다.
인간관계에 도움을 준다는 다양한 앱들과 자기 계발적 조언들, 그리고 그것들이 알려주는 다양한 소통 방식들에도 불구하고 인간 관계는 더 쉬워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감정적 통제의 수단으로 무시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새로운 기술과 관련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 학생들이나 젊은이들 사이에 유령 만들기가 좋은 예가 되겠다. 개인적 관계가 끝이 나면서 한 사람이 갑자기, 아무런 설명도 없이 모든 소통을 단절하는 것이다.
유령 취급을 당하는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무력하고 거부당하고 무시당하지만, 유령 만들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통제권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무관심을 매우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무시당한다는 느낌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 매우 도움이 될 수 있다. 로봇이 어떤 사람들에 진짜로 외로움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로봇이라도 우리의 환상을 완전히 자극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