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이래 저래 몸 상태가 안 좋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과도한 정도가 아니면 그냥 좋은 신호 정도로 여기는 편이다. 인생의 순간의 연속이며, 질병은 지금 이 순간을 지배하고 괴롭히는 나쁜 친구일 뿐이다.
나는 진료실 옷장 공간에 책을 대여섯 권 정도 꽂아 두고 한 번씩 꺼내 읽어보기도 한다. 무거운 분위기의 진료실이라 아무래도 운동과 불교와 심리 등과 관련된 책들이 대부분이다. 자칫하면 책읽기가 그냥 시시한 시간 때우기 일이 되기도 한다.
글 내용의 의미를 새기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앵무새처럼 명 구절들을 읊는 선에서 끝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떤 느낌도 없다. 그냥 머리를 끄떡이면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지만 곧바로 관심은 다른 것으로 넘어가고 만다.
짧은 여유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어떤 생각을 거듭할 때도 있다. 병화가 별로 없는 나의 사고 리듬이 진료실에서 지내기에는 안성맞춤인 듯도 하다. 변화가 별로 없는 책의 리듬은 묵직한 진찰대 위의 환자에게만 맞는 것이 아니다.
병원의 착 가라앉은 분위기와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에도 딱 맞다. 은밀한 암시는 특이 병원의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는 데 그만이다. 환자와 나 둘 뿐이지만, 분위기를 이끌어 주는 제 삼자가 있는 듯한 착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쟁터 같은 생사의 기로가 걸린 상황에서 삶의 길로 이끌어주는 은밀한 존재의 개념이 있다. '제삼자 요인'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극지 탐험가가 빙하에 갇혔을 때 그 존재를 느꼈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신을 믿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 이야기에서도 이런 존재가 흔히 등장하기도 한다. 기행과 속임수, 왜곡이 난무하는 고유수용감각에서도 멋지게 들어맞는다.
나는 자신의 질병이나 장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누구나 세상에 대한 관심을 유지한 채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 사회도 더 멋지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이 거의 없다. 하루를 출발하기 전에는 내 일상과 끔찍한 교감을 나눌 것이란 생각에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오지만, 하지만 실상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일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여러 조력들 덕분에 평소의 나로 쉽게 되돌아갈 수 있다. 생각의 실타래가 눈앞에서 술술 풀리는 느낌이 들 때면 이미 성공한 인생을 살아온 듯 멋진 기분에 누구에게라도 뭐든 도와줄 수 있는 의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