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모든 일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재단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 위기나 정치적 혼란을 제도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 또한 자신의 이로네 부합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쉽게 이야기 해서 우리에게는 이런 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판에서 뼈마디가 굵어진 사람이나 진료실에서 편안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이제는 다른 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일자리 문제는 사람을 고용하려는 사업가보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 즉 노동 공급이 낮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이런 사람들을 일부에서는 신자유주의라 부르지만, 이들 부류는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거나 수용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자신들의 이론은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고 굳게 믿어왔기 때문에 이제와서 번복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이나 행동들을 보수적 본능이라 말하는 사회학자들도 있다. 삶의 예측 가능성을 고수하려는 경향은 인간 심리의 아주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이다. 지속성이 없다면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의 의미를 해석할 수 없다.
그런 만큼 자신 있게 새로운 경험에 도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나무에 매달린 벚꽃이나 감이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 물리적 세상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 않다면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진정한 개혁가라면 자신이 신봉하는 세계관에 새로운 발상과 경험들을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 환경이 갑자기 변해버리면 속상해지기 마련이고, 이 때 우리는 좋아하던 물건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왜 나는 나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원래 좋아하고 따르던 신념에 그토록 매달리는 것일까?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자신교(自信敎)', 즉 '생각하는 쪼대로 되라'교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학문적 흐름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이념적 사고를 신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나 자신의 '자아개념'을 형성해주는 신념을 필사적으로 사수하려고 하는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유능하고, 지적이고,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는 본인의 이미지를 어떻게 해서든지 지키고 싶어한다. 특정 집단, 예를 들어 전통적인 보수적인 '고인 물'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귀속감을 또한 이와 비슷한 자아개념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우리가 이처럼 끝까지 어떤 개념적 집단 속에 남고 싶어할수록 집단 구성원으로 남는 일이 고통스러워진다는 점이다. 자아개념과 상반되는 깨달음과 마주하면 일종의 인지부조화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불편한 감정을 피하거나 줄이기 위해 아예 진실적 사실을 외면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자아개념과 현실이 어느 정도 일치될 수 있도록 세상을 왜곡시켜 버리는 것이다. 흡연자들이 절대로 생화학적 중독 증상 때문에 담배를 피운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냥 담배를 피우는 것이아말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행위이며, 죽음까지도 감수할 정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주는 행위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시킨다. 자신의 기존 세계관이 실패를 맞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책임을 실업자들의 비참한 상황에 돌린다.
경제나 정치 위기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는 시실적 이야기나 보도가 나오면, 시선을 돌리거나 텔레비전 소리를 줄이거나 끄는 행동이 인지부조화에 대한 일차적 대응행동이며, 이런 행위가 바로자아개념도 지키면서 보수적인 본능에도 충실한 반응이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화요일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