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4.02.21 + 작 성 자 : 이동윤
+ 제     목 : 어떠한 시공간도 운동적 흐름 없이는 지속성의 힘을 창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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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운동만큼 미래를 침범하지 않고서도, 총체적이어나 절대적, 또는 환원적이 되지 않고서도 먼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만큼 운동이라는 움직임은 시간이나 공간만큼이나 실재적인 존재의 환원 불가능한 차원이다.

넓은 영역을 가지면서도 여전히 영역적일 수 있다. 어떤 것이 움직인다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움직임, 또는 지향적 관점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므로 움직임이라는 흐름은 운동 철학에 어느 정도 훌륭한 기여를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런 흐름은 자신만의 권역이나 역사적 관점, 그리고 내용에 자의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제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운동에 관한 비형이상학적이며 비환원주의적이면서 더욱 탄탄한 철학과 존재론이 출현할 여지를 충분히 남겨 두고 있다.

움직임의 존재론이 시작되는 것은 원자는 일차적으로 언제나 운동이 있다는 것이다. 원자는 언제나 연속적으로 움직이며, 거기에는 기원도 종말도 없으며, 불멸의 영혼 또한 없다. 운동 중인 물질만 있을 뿐이다.

정적인 현상은 없으며, 운동 중인 물체가 있을 뿐이고, 이런 운동의 나선형 소용돌이를 만들고, 이것이 단단하고 불연속적인 물질로 나타날 뿐이다. 그러므로 안정성과 정지 상태는 더 일차적인 소용돌이형 움직임의 상대적 산물이다.

이렇게 원자는 언제나 운동 중에 있지만, 원자 자체는 언제나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고, 불가분하므로 내적으로 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불연속적인 원자가 존재론적으로 일차적인 움직임 또는 물질적 흐름을 형성한다.

물질은 휴식 없이, 시간이나 공간이 없는 연속적이고 소용돌이처럼 요동하는 흐름의 움직이는 존재이다. 여기 이런 관점에서 물리적, 인식론적이며 철학적이고 현대적인 존재로서의 이론적 근거들이 시작되는 것이다.

존재는 관념이 아니라 물질이며, 논리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자유롭다는 의미다. 원자는 항상성 운동 중에 있으므로 직선 속에서는 사라진다. 원자가 직선 속에 들어오면 고체적 무엇으로만 인식되기 때문에 존재성이 사라지게 된다.

이런 인식의 확장에서 신체적 움직임이 정적인 사물이 아니라 물질적인 흐름 또는 운동으로 인식된다. 사회주의적인 사고, 즉 노동이 상품이라는 결정화된 존재적 의미를 가지며, 사회적 신진대사의 구조 속으로 흘러들어 순환되고 고정된다.

사물은 고정된 상태들이 아니라 움직이는 영역 내의 유체성 원자 덩어리들이며, 끝없는 흐름 속에서만 서로의 존재감을 계속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자연은 물질 위로 흐르는 하나의 단일하고 막대한 물결 같은 것이다.

운동의 기운은 모든 생명 안에 기본적으로 있으며, 그런 기운을 정량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에너지의 움직임이며, 이런 흐름을 만드는 것이 순수한 시간의 지속성이, 즉 움직임 그 자체일 뿐이다. 시간은 움직임 그 자체이며, 움직임을 통해 지속성의 힘이 생긴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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