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시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가 꽊짜인 일상의 흐름 속에서잠깐 나와 바깥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숲과 잔디와 곡물들이 성장하는 인공과 자연이 혼재되거나 조화된 현대 세상을 보전하고 있는 야생 속의 자연 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경험은 단순히 현대의 디지털 문명의 자유나 문화와는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여전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한 사회의 구성원 이전에 이미 자연의 일부이거나 자연 개체로서의 존재 그 자체다.
현대의 디지털 문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며, 그들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바깥, 즉 자연 속의 운동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율이 많아지고 있다. 시위만 하더라도 실내보다 뻥뚫린 넓은 야외 광장에서 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수도자들의 탁발 수행이나 성지 순례의 모습들도 비슷한 형태의 야외 활동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인간 세상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게으른 방랑자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진지한 자연애호자들이다.
내가 실내보다 야외 걷기나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강가나 산속에만 들어가도 완전히 다른 세상에 내동댕이 처진 겉과 같은 상황에 빠진 듯한 감정을 느낄 때가 특히 더 그렇다. 특정한 집의 소유 여부와 상관 없이 세상이 내 집이라는 의미다.
늘 집안에만 있는 사람이나 늘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사람이 모두 똑같이 방랑자이며,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이 부랑자가 아니듯, 방랑자 또한 부랑자는 아니며, 강처럼 늘 바다로 가는 지름길을 찾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현대인의 바깥 나들이는 단순히 유람이나 여행일 뿐이다. 저녁이면 다시 출발점인 익숙한 집 안이나 텐트 속으로 갔던 길을 되돌아 돌아온다. 그런 마음 속에는 반은 언제나 갔던 길을 되돌아 오지 않겠다는 정신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영원히 타오르는 모험 정신으로 지름길을 직진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 비로소 출발할 준비가 된 것이다. 혼자건 친구와 함께든 걷거나 달리는 것은 언제나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온 오래된 질서를 유지하고 지키는 수호자가 된다.
우리는 가마나 차를 타지는 않지만, 훨씬 더 전통적인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양반들, 즉 산책하는 선비들의 후손들이다. 전통을 지키려는 정신은 공직자가 아니라 방랑자들에게 계승되며, 산책자는 종교, 국가, 국민에 이은 제4계급에 속한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의 의미를 수긍한다.
가끔 걷기나 달린다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방랑적 걷기나 산책을 할 수 없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방랑에 필요한 여유와 자유, 그리고 독립감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권리가 아닌 가치적 존재감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