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고, 그 후에는 부족들에게 우월감을 자랑하기 위해 선사시대부터 달리기를 해왔다. 르네상스 이후 현대 사회에는 굉장히 중요한 경기로 격상되었으며, 1896년 올림픽이 재탄생한 시점에서부터 뿌리를 찾을 수 있다.
21세기 기술정보산업시대로 접어든지 20여 년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달리기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운동 경기이며, 여전히 달리기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맨발로 경기를 했고, 경기화의 출현은 로마시대부터이다.
산업혁명 시대 전까지 신발은 그리 많이 발전하지 못했고, 18년대 들어서야 스파이크가 달리는 등 특수 러닝화가 개발되기 시작했지만, 재료는 일반적으로 가죽, 고무, 나무, 못, 실, 천 등이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1900년대 초반 미국과 유럽 사회에서 달리기가 중요한 운동으로 각광받기 시작하자 축구나 테니스, 야구 등에 비해 참여 인구가 적었음에도 스포츠용품 회사들이 러닝화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까지도 달리기는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여가 시간이 증가하고 경제적 안정성이 높아지면서 달리기를 하는 시민들의 숫자는 이미 증가 추세로 들어섰고, 사람들은 자기표현 시간, 팝 문화, 개인적인 성취감 등을 중요시 여겼고, 달리기가 그 부분을 채워주면서 달리기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우연하지 않게 1960년에 최초로 텔레비전에서 올림픽 달리기 종목을 중계할 때 케네디 대통령이 국민들의 건강을 독려하고 대통령 산하기관인 체력 건강 위원회가 달리기를 지원해주면서 워싱턴 외곽에서는 'JFK50'이라는 50마일 경기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달리기가 기부금 후원을 위한 행사의 역할은 하지 못했고, 사회적 인식 또한 그리 높지는 않았다. 보스톤 마라톤 대회는 1897년에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마라톤 대회이고, 정상급 선수들과 마라톤에 열광하는 사람들만 참가했다.
그런데도 1960년대 197명의 선수가 참가했지만, 1969년 1,342명으로 증가했고, 1970년에 시작한 뉴욕마라톤 대회는 단지 127명의 선수만 참가했다. 그러다 프랭크 쇼터와 빌로저 같은 유명 선수들의 등장으로 참가자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나라는 1995년에 처음으로 조선일보 춘천마라톤과 동아일보 경주 마라톤 대회에서 시민들의 마라톤 대회인 마스터스 대회를 개설하여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참가자는 고작 300~500명 선이었다. 그전까지는 국가대표들을 위한 엘리트선수들이 경연장이었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개최를 시작으로 사회 경제적 발전의 성취에 따른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자유로움 속에서 홍수 예방을 위한 한강 정비사업이 성공적으로 완성되면서 비로소 시민들의 달리기 참여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손기정, 서윤복, 함기용, 이창훈 같은 국가를 빛낸 선배들의 뒤를 이은 현대의 바로셀로나 영웅 황영조, 국민 마라톤 시대의 페이스메이커인 이봉주 선수들이 기여한 바를 잊을 수가 없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2월 마지막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