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일종의 움직이며, 어떤 주어진 과정에 따른 일정한 생성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시간과 공간, 힘 같은 엄격한 물질의 유동이 바로 운동의 움직임이다. 어떠한 것도 이런 물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시간과 공간은 실재의 차원이지만, 운동이라는 존재론적 움직임 속에서 시간과 공간은 환원 불가능한 일회성 방식의 물질적-동적 차원이다.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는 것은 쉽지만, 둘이 어디서 갈라지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과정은 실재적이지만, 변화와 운동은 말 그대로 실재적이지 않다. 이런 변화는 어떤 결정된 사건으로 이루어진 현실적 기회들 사이의 차이에 불과하며, 그러므로 나란 현실적 존재자에게 변화를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실적 존재자는 결코 움직이지 않고, 그것은 그것이 있는 곳에 그것 자체로서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변화와 운동은 현실적 존재자들의 순서와 관계되어 있을 뿐이며, 이들 간의 차이들로서만 구성된다.
모든 존재자는 단순히 '그것' 또는 '나' 자신이며, 그것은 실재 자체가 상이한 사태들의 순차 속으로 들어섬으로써 어떤 생성'이 만들어지지만, 엄밀히 따지면 어떤 존재자도 변화하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순수한 논리적 변화의 종류들은 과정의 변화는 실재적 이행이 아니고 흐름도 유동도 아니며, 단지 변화는 변화가 불가능하고 정적인 상이한 현실적 존재들의 계열별 순차적 실존에 따라 일어나는 사실에 불과하다.
변화라는 관념 자체가 치료 불가능하도록 정적인 개념이 되는 것이다. 모든 운동이라는 움직임은 정지를 전재하고 있으며, 운동의 이론과 정지의 이론은 같지만,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다른 면모에서 본 것일 뿐이다.
생성의 연속성은 없고, 연속성의 생성만 있다. '움직이지 않음'이 이동을 전제하며, 모든 것은 운동 중에 있다는 사실의 전도이다. 과정은 운동과 상당히 다르며, 심지어 운동을 전적으로 제거하고서도 생성의 과정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란 존재는 공간, 영원, 힘, 시간, 운동 등의 단일한 이름에 제한되지 않고, 순수 생성 또는 차이적 과정의 존재로 이해되고, 존재하는 모든 거대한 이름들이 같은 존재에 대해 똑같이 그리고 하나의 의미로 말해지는 포괄적이며 복수주의적인 것이다.
운동 과정을 통한 '생성'이라는 존재론은 다른 모든 존재론에 대한 소박하고 모순적인 긍정이 아니라, 모든 존재론 자체를 하나의 과정으로서 생성으로서 완전히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간, 사고, 힘, 시간, 운동 등등의 모든 과정에 적용될 수 있다.
대상과 사물에서 나타나는 과정 철학이 나란 존재에 대해 생성이 가지는 존재론적 일차성과 일관성을 보여준다. 생성은 연속적 유동과 물질, 운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해, 사고,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도 흥겹고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