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완벽하지 않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조금씩 늙어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냥 틀릴지도 모르지만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캄캄한 어두운 밤에 그냥 앞만 보고 달리고 또 달려나갈 뿐이다.
진지하게 음미해보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살아보지 않은 삶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창조적인 삶은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에 달려있다.
어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위험과 정면으로 마주 서는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 위험을 자연스럽게 피하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는 데 익숙해 있다. 또한 스스로를 드러내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사람들 앞에서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엉망으로 헤매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내가 정말 멍청해 보일꺼야'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연자들의 강연을 보는 잣대로 나 자신의 첫 걸음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대신에 나 자신의 한계를 성공이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두고 싶어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울타리 안에 사는 것이 숨막히고 갑갑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삶에서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안전하다는 것은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환상적인 경험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또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무의식적으로 힘없이 응한 이 한계를 과감히 떨쳐버려야 한다.
너무 늙었거나 돈이 없거나 부끄럽거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소심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절대 못해!'라는 자기 방어적인 생각을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뭔가를 못 하겠다고 말할 때는, 그것을 완벽하게 해낸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살아가면서 새로운 창조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막힌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기를 비현실적으로 기대하고 요구한다.
나 스스로 그어놓은 가능성의 영역 밖에는 무언의 수많은 요구가 놓여있게 마련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능력을 새롭게 개발하는 대신에 나에게 익숙한 일이나 역할만 맡으려 한다. 지금까지 달리던 대로만 달리려 하는 식이다.
달리기는 실내에서 방석 위에서 제자리 달리기도 할 수 있고, 트레드밀 위나 트랙에서도 달리고, 강가나 산에서도 달릴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자들은 자신이 평소에 하던 달리기 방식을 자신도 모르게 집착하게 된다. 새로운 달리기에 대한 모험을 하지 않는다.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혼쾌히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 편하다. 그러면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날 수 있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