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세상이 '공(空)하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었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모든 연기적 조건 이전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연기적으로 규정된 형상에서 거슬러 올라가 연기적 조건 이전에는 어떤 정해진 바나 의미도 갖지 않음을 보는 것이다.
어떠한 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순수한 잠재성 그 자체로 앞으로 만나게 될 어떤 연기적 조건에 따라 이런저런 규정성을 갖게 될 무규정성이고, 무의미하지만 조건에 따라 이런저런 의미를 갖게 될 무의미이다.
아무 것도 없이 비어 있다는 '없음'의 의미가 아니라 존재의 가능성을 가진 무존재성이고, 다양한 의미화를 향해 열린 무의미이다. 즉 수많은 가능성을 갖지만 지금 현재 아무 것도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수많은 존재의 가능성을 갖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존재 의미만을 부여할 수 없는 잠재성이디. 생명체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물 분자의 일부로서 산소라는 이웃한 원자와의 결합에서 분리된 수소는 이제 물 분자이기를 중단한다.
그것은 산소원자와 분리되어 수소이길 중단한 수소원자와 이웃한 탄소원자와 분리되어 메틸기로부터 분리된 수소원자와 구별되지 않는다. 수소원자 자체로는 어떤 존재적 의미나 가치를 가지지 않고 비어있지만, 어떤 원자를 만나는가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수소 원자가 수소원자인 채 현재 어떤 분자로서의 존재성이나 의미성을 가지지 않고 순수한 수소원자로만 있음을 보는 것이다. 그 자체로는 어떤 분자적 성질을 갖지 않지만, 수소나 물, 메틸기 혹은 메탄이나 에탄올 등 수많은 분자 속으로 들어가 그에 맞는 분자로서의 잠재성을 갖고 있는 상태인 것이 공의 의미다.
물이 물인 채, 줄기세포가 줄기세포인 채, 달걀이 달걀인 채, 사람이 사람인 채 공성을 가진 존재임을 보는 것이다. 달리기를 할 때 근육들이 힘들게 움직일 때 산소와 포도당을 공급해주기 위해 심장과 폐가 그에 맞춰 빨리 움직여주지 않으면 죽는 수가 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우리 인간의 신체 리듬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시간이다. 제의나 세시풍속으로 표시되는 시간이나 계절에 따른 24절기는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의 리듬에 맞춰 만들어 낸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구성요소들이 서로 결합하여 하나로 개체화되려면 리듬을 맞추어 하나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개체화가 중단되면 그 개체의 시간도 소멸하게 된다. 하나처럼 맞추어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바로 시간의 의미성이기 때문이다.
공성은 삶과 관련된 모든 연기적 결합, 모든 리듬적 동조를 향해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존재적 가능성을 향해 열린 순수한 잠재성이 바로 공성, 즉 비어있음의 의미인 것이다. 사람이란 규정성을 가진 그대로 수많은 규정 가능성을 가진 무규정적 존재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