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17.11.23 + 작 성 자 : 관리자
+ 제     목 :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나의 잠재성이 바로 나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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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이나 집, 혹은 천에 이런저런 색깔이 칠해지고 지워지며 만들어지는 세계란, 모든 색체가 될 수 있는 빛의 잠재성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어떤 형태도 될 수 있는 선이나 면의 잠재적 능력 또한 어떤 형태도 아닌 무규정성의 순수 잠재성이 그때그때 조건에서 이런저런 형태를 가능하게 한다.

모든 색체가 사라진다고 해도 빛의 그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모든 형태가 사라진다고 해도 선이나 면의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빙츼 파동을 색으로 포착할 능력이 없다면, 선의 움직임을 형태로 지각할 능력과 만나지 못하면 어떤 색도 형태도 될 수 없다.

어떤 능력과 그런 능력이 포착하는 이런저런 색이나 형태와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다. 생명도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규정성을 갖는 생명체가 자신이 처한 조건에서 살아가게 하는 능력, 그 순수한 잠재성이 바로 생명이고 생명력이다.

생명력은 이런저런 조건에서 어떤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능력 그 자체다. 즉 삶이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은 특정한 생명체의 능력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에 속하는 능력이다. 강아지나 소나무 같은 생명체와 별개로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그 생명체들과 함께 존재하며, 그런 생명체들로만 존재할 뿐이다. 어떤 소리나 색깔이나 형태, 혹은 생명력도 될 수 있는 각각의 잠재성 그 자체와 수많은 형태가 있을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실체의 한 속성과 수없이 많은 모양과 형태의 세계가 있다.

그래서 어떤 존재란 하나의 체(體)와 수많은 상(相)과 그 상들의 다종다양한 쓰임새인 용(用)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저런 규정성 속에서 산다. 나는 이동윤이라는 이름을 갖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부산대학을 나오고 서울에서 의사로 살아가고 있다.

즉 그런 규정을 갖고 있으면 군의관으로 근무했고 이런저런 직위와 역할과 일들을 하며 살아온 경력이나 연대기는 이런 규정들의 집합이다. 그런 규정들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 만난 어떤 사람이 "아 한국인!"하는 순간, 이제까지의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게 된다. 한국인인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규정성이지만, 그 속에서는 외국인들이 부여하는 위치나 의미들에 포위된 한국인으로만 파악될 뿐이다.

한국인이란 규정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의 존재, 즉 나 자신의 참모습을 안타까워하거나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 규정성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 사라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상처받고 절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한국인이란 규정성을 벗어날 수 없는 한, 그것에 의해 가려진 나의 존재는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한 사람의 한국인일 뿐이다. 한국인이라는 규정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주기보다는 알 수 없게 해주는 요인이다.

지금까지 나를 규정했던 모든 표현은 나의 일부를 나타낼 뿐 드러내는 것만큼 가리는 것이고, 이때 가려지는 것은 규정성의 어둠 속에 있는 드러나지 않고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나의 잠재성이다. 하나의 규정이 드러나는 순간 그 뒤로 밀려나 숨겨지는 잠재성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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