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불교 신자들의 마음 바탕에는 유식(唯識)이라는 의식이 존재하고 있다. 유식이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 인간을 중심으로 정신과 물질 등 우주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 의식인 심식(心識)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믿음이다.
정신과 물질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평등하게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항상 정신이 주체가 되는 관계를 보이고 있다. 정신을 똑바로 박혀 있어야 세상 모든 생각의 주인이 되고 선과 악 등 모든 언행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
우리의 의식은 일종의 정신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서 현실과 본성, 수행과 기도의 도움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의식, 즉 생각은 현재 마주하고 있는 대상을 그 자체로 분별하여 알아차리는 작용이다.
살아가며 제일 귀한 것이 바로 우리 생명이다. 자유와 재산과 더불어 생명 그 자체가 기본권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생로병사의 작용을 하는 존재’를 생명으로 인식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 생명은 유기체가 무기물의 합성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자체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는 ‘기생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인공수정’ 태아와 함께 최근의 ‘동식물복제물’도 당연히 생명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래서 중국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수많은 손오공의 분신들도 현실적으로 각각이 하나의 생명체로 수용될 수 있다.
모든 생명체는 먹고 자는 것도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지만, 꿈 또한 매우 중요하다. 꿈이 없는 생명은 ‘빛이 없는 태양’이나 ‘물이 없는 강’과 같다는 말도 있다. 꿈이 바로 생각의 연장선이며, 세상 모든 존재는 생각에 의하여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에 불과한 것이 유식설의 본질이다.
이런 현상을 생각의 변화라 하는데, 생각의 변화에 따라 3가지 의식이 나타난다. 첫째 아라야식은 근본식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법의 종자가 된다. 둘째 사리분별의 작용을 하는 말나식으로 아라야식에 의존하여 일어나지만 아라야식을 대상으로 하여 아집을 일으킨다.
셋째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의 6식인데, 각각 색, 성, 향, 미, 촉, 법을 인식한다. 그런데 자기의 대상을 공(空)이라고 깨달아 실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마음은 유식성(唯識性)에 존재하게 된다.
번뇌는 마음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마음을 정화하면 번뇌도 정화된다. 번뇌가 정화된다는 것은 번뇌 자체가 실체가 아니며, 가상의 생각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실체 없는 번뇌라도 마음이 자아의 모습(아상我相)과 삼라만상의 모습(법상法相)을 확고하게 집착하고 있는 한 쉽게 정화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유식학에서는 먼저 자각을 야기하고 이타적인 보살의 수행을 하여야만 그 번뇌들이 정화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수행은 반드시 마음이 번뇌가 정화되어 보리와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는 뜻에서 바라밀이라고 한다.
오늘도 흥겹고 시원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79회 광복절의 환희 만끽하는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