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은 하나의 큰 흐름이다, 그런 넓은 관점으로 바라보거나 삶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맡은 역할을 겸손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면, 또 나 자신을 웃음의 소재로 삼을 줄 알게 되면 누구나 삶의 고통, 불완전함, 그리고 아름다움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무엇이든 바꿀 수 있으면 싫어할 것이 없고, 만약 바꿀 수 없다면 싫어하는 것 또한 소용이 없는 법이다. 즉 어떤 삶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체념이나 패배와는 다르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지치지 않고 행동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왕성한 삶의 에너지는 세상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나온다. 기쁨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바람에 맞설 수 있고, 눈보라 치는 태풍도 뚫고 지나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것은 삶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좌절과 고난을 삶을 이루는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좌절과 고난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가 아니다. 내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이다. 스탈린에 의한 한민족의 시베리아 강제이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들이 고려인의 긍지를 지켜온 것이 좋은 예다.
우리 사회에 어떤 아주 나쁘게 보이는 정책들이 시행되고, 사람들이 그런 지독한 나쁜 정책들로 인한 고통을 겪으면 어떤 선한 의지도 나올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런 현실을 두고 슬퍼하거나 비통해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어 마땅한 평안함을 찾기 힘들다.
그런 현실에서는 이성의 힘은 눈이 멀어지고, 너무도 초라하고 단순하여 깨달음의 높고 놀라운 지혜와 힘과 선함을 알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젠가 세상은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용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자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 하는 것과 상관없이 즐거움이 충만함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바라는 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삶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의 흐름에 화내지 않아도 된다.
삶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기대가 스트레스와 걱정을 주게 만든다. 삶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 대신에 있는 그대로의 오늘 하루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삶이라는 자동차를 수월하게 운전할 수 있게 된다.
고통이나 스트레스,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훨씬 더 편안하고 안락하고 행복 가득한 부드러운 느낌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된다. 삶이 사람과 장소와 인생 만사와 환경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때 고통이 일어난다.
모든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판단과 비판, 걱정과 절망, 심지어 부정과 중독 안에 갇혀 있게 되어 절대로 기쁨을 느낄 수 없다. 수용은 이런 모든 저항을 뚫는 칼로 정신을 편안하고 만물을 뚜렷하게 보고, 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하기기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