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18.02.08 + 작 성 자 : 관리자
+ 제     목 : 빅 브라더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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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30년 가까이 내가 "큰 형(Big Brother)"이라 부르며 형제처럼 지내던 일본 니가타현에 사는 정형외과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리고 있다.

작년 치토세마라톤대회에서 만나 이틀밤을 같은 호텔에서 보내며 고향도 구경시켜주는 등 자애로웠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나중에 우리 일행 4명의 호텔비를 모두 자신이 먼저 결제해서 하반기에 서울에서 갚아주기로 했는데..성사되지 못했다.

작년 11월 경에 갑자기 메일로 자신이 여생이 1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연락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대장암인데 말기라 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병문안이라도 한 번 가겠다고 했더니 자신이 변한 몰골을 보여주기 싫다고 극구 사양하셨다.

그래도 한 번 가볼까하고 우리 상가에 있는 일본식당 사장님께 일본의 병문안 문화, 우리는 본인이 거절해도 꾸역꾸역 가서 얼굴 도장 찍고 오는 듯한 강제 병문안도 하기도 하는데, 일본은 어떠냐고 여쭤봤다.

일본은 일단 본인이 거부하면 가지 않고 다음에 그 지역에 가는 길이 있으면 집에 가서 모셔진 위패 앞에서 두 번 목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하면서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섭섭하지만 가지 못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상을 떠날 때가 임박한 나이 든 환자들은 삶의 마지막 몇 개월은 자기가 살아온, 익숙한 집에서 보내고 싶어 하지만 암을 뒤늦게 발견하는 통에 병원 등에서 쓸쓸히 숨지는 경우들이 많다는 연구들이 있다.

돌아가신 메이온 선생님께서도 마지막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해본다. 함께 이야기도 들어주고 이해도 하고 공감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인데,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으니 무력감만 느낄 뿐이다.

평소 매년 2~3회 서울이나 일본에서 만났을 때 선생님께서 살아오신 인생, 즉 시간이 만든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어야 했는데, 내 좋아하는 술 마시고 잡담하는 데만 치중한다고 그런 정말 중요한 시간들이 너무 없었던 것 같아 후회가 된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만남 동안 서로 힘을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하거나 잡담을 나누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와 배경을 바탕으로 일정한 우리 삶의 방향성을 잃지 않았던 것에 대해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의사의 사회적 역할 같은 것..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서로의 고통의 여러 측면들을 보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때도었다.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고 고통을극복할 힘이 생기기도 했다. 고맙고 감사한 일들이었다.

한국달리는의사들과 일본의사조깅연맹 사이에 친목협의체 결정의 주역이셨던 이시즈까 메이온 선생님의 영전에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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