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18.04.12 + 작 성 자 : 관리자
+ 제     목 : 생생하게 깨어 있으면 어떤 감정이든 진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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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과 땅이 서로 모르지만 거기서 싹이 나듯이 나의 자아에는 실체가 없지만 마음에서 일어나는 고통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맑은 거울에 비치는 그림자처럼 실체가 없지만 마음을 출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업도 실체가 없지만 일상을 통해 선악의 씨앗을 뿌리면 그것이 싹을 틔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는 평상심만이 과보를 이끄는 힘이 없다. 그런 힘은 과거로부터 오며, 업에 동화된다는 것은 과거에 동화된다는 의미다.

스스로 희생자임을 자처하는 것은 과거가 현재보다 더 강하다는 믿음 때문이며,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적 고통과 진정한 자기자신이 될 수 없는 무능에 대한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과거는 현재보다 강할 수 없으며, 현재의 자신의 내면의 공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책임이 있고, 과거의 업은 지금 현재의 힘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업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면 업을 다룰 수가 없게 된다는 말이다.

개인 차원에서 피해의식을 버릴 수 있을 만큼 이미 충분히 깨달았지만, 남자에게 당한 집단적인 희생자로서의 정체성은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여자들도 있다. 그들이 옳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여자들의 집단적인 업이 대부분 수천 년간 남자가 여자에게 가한 폭력과 억압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로부터 자의식을 이끌어내고, 계속해서 집단적인 피해의식을 갖고 있어야 할 당위성은 없다.

어떤 여자가 여전히 분노, 원망,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면, 그녀는 자신의 과거의 업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위로가 되고, 다른 여자들과의 결속을 다져줄 수는 있겠지만, 과거에 자신을 계속 묶어둠으로써 자기 본질의 진정한 힘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여자들이 남자들을 배척한다면 그것은 분리감을 조성함으로서 에고를 강화시키고, 에고가 강해질수록 진정한 자아의 본질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나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업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업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위해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한 방편이다. 업을 이용해서 의식을 바꾸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의식 속에서 헤매기도 하겠지만, 일단 어떤 수준의 의식에 도달하게 되면 이런 과정을 거꾸로 되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긴장감이든 갑작스런 분노나 짜증이든 나타나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점령하기 전에 그것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주의를 집중하여, 그것이 감정이라면 그 뒤에 충전된 에너지를 느끼고, 그것이 업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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