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후 6시 30분 경에 일과를 끝내고 밖에 나오면 어두컴컴한 어둠과 차고 쌀쌀한 기온이 마음에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두 발을 지하철역으로 돌리라고. 항상 이맘때의 퇴근길 걷기나 달리기는 어릴 적의 별이 총총하던 밤으로의 여행을 가게 할 때가 많다.
한밤중에 숲이나 강가에서 달빛을 받으며 달리는 시간은 다른 세계로 옯겨간 느낌과 함께 생생한 기억의 흔적을 남긴다. 끝없는 하늘과 밝은 달빛, 반짝이는 별들 아래 보잘것없는 몸체 하나뿐인 나 자신을 느끼게 된다.
내가 개인적인 삶의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거대한 우주 속하찮고 혼란스러운 한줌의 숨결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더욱 생생하게 만드는 그 힘에 휨싸이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평범한 인식들의 세계와 밝은 낮의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경험이다.
그런 벗어남은 바로 나 자신의 내면에 빠져든 상태로 쉼사리 공유하기 힘든 내밀한 종교적 믿음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어둠은 양면적이어서 감사와 안도감과 내향성 공간을 얻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와 위험에 빠진 사람도 있다.
마음 속에 두려움을 품게 되면 주변에서 불쑥 나타나는 나무나 사람들을 만나면 분명히 공포를 느끼게 되지만, 어떤 사람들은 환희에 차서 여정을 시작했다가 별안간 나무 사이로 떨리는 바람 소리에 지레 겁을 먹고 뜻밖의 것을 만날까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혼자 야밤에 낯선 장소를 걸을 때는 밝은 보름달 밤에 대한 낭만은 버려야 한다. 어둠이 의식을 고조시켜 공간은 다시 두려움 또는 아찔함, 시작 또는 끝의 장소가 된다. 어둠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새로운 발견이어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는다.
집 떠난 사람에게는 밤을 지낼 안식처를 찾는 일이 큰 걱정거리인데, 두 발을 따뜻하게 쉬게 할 수 있는 잠자리의 맛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화의 안락함에 젖은 타성을 벗어나는 일은 때로는 상상 이상으로 간단하다.
억수 같이 쏟아지든 빗줄기가 그친 직후의 차가운 가을밤에 몸을 떨게 하는 한기를 느끼면서도 그런 초연함을 행복하게 느끼는 새로운 경험을 넘어서 달과 밤, 침묵과 바람막이 자켓 속에 웅크린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움직임들을 새롭게 발견한다.
가을비 속에 천막이나 지붕 아래 비를 피하는 일은 그 때까지의 히로를 정당화시켜 주는 감미로운 기쁨으로 금새 빠져들게 만든다. 지금까지의 힘든 시간이 멈춘 듯한 그 환희의 순간에 애정을 갖게 된다.
평생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듯한 뜨거운 컵라면 국물과 따뜻한 커피믹스 향이 앚을 수 없는 침묵과 차분한 진정의 보물 상자가 되는 행복감을 만끽한다. 입으로 들어가는 한 입, 한 모금이 평화로운 쾌활함으로 온몸으로 퍼지며 부드럽게 가슴 속에 자리 잡는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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