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19.02.18 + 작 성 자 : 관리자
+ 제     목 : 지금 깨달음을 찾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면 나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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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싸고 있는 풀과 나무들은 내가 그들을 볼 때만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든 말든 항상 거기 있다. 내가 볼 때만 내 의식이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내 생각이 그렇게 투영되는 것일 뿐이다.

풀과 나무는 영화처럼 스크린 위에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영상들이 지나갈 때마다, 우리는 마치 실제처럼 여기게 된다. 나 자신도 스크린 위에 비치도록 영상을 비춘다면 스크린을 보는 나와 내가 보는 영상이 함께 스크린에 나타나게 된다.

내가 스크린이기도 하지만, 또한 역시 스크린인 나는 자아라는 에고를 만들어낸다. 풀이나 나무처럼 현실에 드러나는 모든 것은 나라는 자아에 붙어있는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현실 세상에서 내 눈에 비치는 만사가 다 '나'인 동시에 존재한다는 생각일 뿐이다.

나의 본성은 실상 무한히 자유롭지만, 세상에 속박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온갖 방법을 써면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나는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왔고, 그런 존재로 현존하고 있으면서도 이 상태에 도달하려 발버둥치고 있다.

내가 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고 있다면 나는 꿈 속에서 온갖 신기한 일들을 경험하머 즐겁게 놀기도 하고, 무서운 동물에 쫓겨 도망치기 급급하기도 하다가 잠을 깰 때도 있다. 그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잠자고 있는 내 방임을 확인하곤 안심하게 된다.

잠자는 중에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진 고생 끝에 이 방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이미 처음부터 이 방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방에서 편안하게 잠자면도 왜 그런 부산한 세상 경험의 공상에 빠져 있는가?

이런 모두가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나 자신인 스크린 위에 나 스스로 영상을 비추고 혼자 어디서 온 빛인지 헷갈려 하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은 영상만을 보는데, 영상이란 생각에서 나오는 순수의식의 빛이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보통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생각 자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지나친다. 마음이 밖으로부터 오는 빛에만 민감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스크린 자체인 자신의 근원에 대해서는 살피지 않기 때문이다.

좁은 계곡 안에 사는 사람들은 탁 터인 능선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계곡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한계 안에서면 세상을 받아들인다. 마찬가지로 우리 가슴이나 영혼 속에서 우러나오는 무한한 의식의 빛은 각자의 마음에 잠재된 습관의 틀에 갇혀버린다.

이렇게 가슴의 빛이 제한적으로 굴정되는 현상이 바로 마음의 흐름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에게 비춘 반사광만 보면서 자신을 유한하고, 개체적이며, 따로 구별되어 존재한다는 오해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깨달음이 필요해진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주 만들어가 보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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