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19.10.15 + 작 성 자 : 관리자
+ 제     목 : 나의 걱정꺼리는 모두 신의 몫이라는 믿음, 이것이 헌신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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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잘 달리고 싶다고 생각하면 달리기가 점점더 어렵게 느껴지듯이 무엇을 위해 행동하거나 살아간다는 느낌이 남아 있는 한 그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잘 달리고 싶은 갈망이 내 삶의 징표처럼 다가온다.

도와주되 도와준다는 마음이 없이 도와주는 것, 즉 어떤 행동을 한다는 느낌이 소멸되고 난 뒤라야 진정한 나의 순수한 마음이 나타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행동 자체는 속박이 아니지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바로 속박이다.

"고요하라. 그리고 내가 하느님인 줄 알라."는 성경 시편46장10절의 문장도 고요함이란 실오라기만큼의 개체성마저 내려놓고 완전히 신에게 신명을 바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내면이 고요함으로 가득차면 마음도 날뛰지 않게 된다.

마음이 날뛰는 것은 욕망, 행동하는 사람 또는 행위자라는 느낌 그리고 개체성이 그 원인이다. 그것을 그치면 내면은 그야말로 고요해진다. '알라'는 말은 '존재하라'는 말과 의미가 통한다. 앎에는 아는 사람과 행위와 대상이라는 상대적인 요소가 따로 없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사람'이다.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신이지, '내가 신이다'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존재한다'는 생각 대신에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하느님인 줄 알라'는 것이지 '내가 하느님인 줄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 자신의 몸과 정신 그리고 모든 소유물을 신에게 바친다고 말하지만, 신에게 바치는 그 소유물들이 진정 나의 것인가?

"저는 지금까지 이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인데도 불구하고 제 것인 양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인 줄 알았으니 더 이상 내 것인 양 굴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유일한 실재는 신 혹은 나뿐이다. 나도 없고, 내가 가진 것도 없음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러므로 헌신과 깨달음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헌신은 바로 '깨달음의 어머니'이다. 일상의 이런저런 근심 걱정을 극복하는 길이 바로 기도보다 믿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의미다.

믿는다면 신의 뜻에 따라 살아야만 하며, 괴로운 일이 생겨도 걱정하지 않게 되고, 또 그럴 것이다. 또한 외부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영적인 차원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현실의 괴로움이 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끌기도 하는 이유다.

세상에서 처자식과 친구와 친척들이 있고, 그들을 팽개칠 수 없어서 신의 의지에 완전히 자신을 맡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말로만 헌신하고 실재로는 헌신을 하지 않는 증거다. 오로지 믿고 따를 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헌신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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