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의 삶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거기에서는 그곳에 맞는 커피 주문 방식이 있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지만, 잠깐 동안 시간만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창문이 있고, 앉을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거리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으며, 그런 자리에 있는 자신이 슬프다거나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불행과 행복의 존재 역시 행복에 대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카페에 앉아 주문한 커피를 마시며 자신이 왜 슬프고 불행한지, 또는 즐겁고 행복한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삶이라는 이름은 단순하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사람들에게 안겨 주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삶의 문제들이란 것이 스스로 인정하기에 기분 좋은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이 사람들을 두렵게 만든다. 그런 두려움은 그 정체를 잘 알고, 그것들을 마주보고, 자신에게 닥친 문제가 무엇인지 직접 대면하지 않으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두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뭔가 부족감을 느끼고 불행하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전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의 직업에 따라 행동하도록 습관지어져 있다. 여전히 기분이 우울하지만 카페에 게속 앉아 있을 수는 없고, 커피나 음료 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온다. 밖에 나와 잘못하면 마주 오는 사람이나 차들과 부딪칠 뻔 위험할 때도 있다.
항상 우측 통행을 해야 하지만, 요즘은 휴대폰 액정화면에 정신이 팔려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나 운전자도 흔하기 때문이다. 길을 갈 때는 항상 내가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혼자 중얼거리며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진짜 불행한 일도 없어보이면서도 점점 더 불행해져 가고 있는 듯하다. 그런 첫째 이유는 행복을 목표로 삼고, 또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교가 자신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에 알맞게 적응시킨 것일 뿐이다.
종교적 수행이 사람들의 불안을 덜어주고 서로에게 더 많이 웃으며 즐겁고 친절하게 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주 웃으면 말하기조차 힘든 일들이 일어나곤 하는 일상조차도 진정한 행복을 방해하지 않게 된다.
종교적 수행은 행복은 누군가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가 있는 현재 여기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행복은 미래에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꼭 더 부자가 되어야만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