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자연도 집도 아닌 진료실이다. 나에게는 그 긴 시간이 즐거웠다. 책상 앞에서 앉아 환자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다른 어느 순간보다도 더 특별하고 즐거웠다.
불편한 이야기를 듣고 그 원인을 찾으며, 또 다른 위험 가능성을 살피며, 치료를 하는 일이 나를 그토록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고는 학교 다닐 때는 생각조차도 못했다. 진료는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면의 평화를 나에게 되돌려 주었다.
아니 이전에는 그런 평화로움을 단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환자들이 이야기했던 즐거움을 주는 일, 야외에서 힘들게 달리며 움직이는 신체적 노동, 의미 있는 일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진료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제는 비로소 사람이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비결이 무엇인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깨닫는다. 환자들은 자애롭고 풍부한 지식과 지혜까지 겸비한 스승과 같다. 세상살이에 관해서라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게 되고, 일종의 부성애 같은 마음으로 환자들을 대하게 된다.
환자들 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과 나무와 풀과 하늘까지도 마찬가지여서 마치 어릴 적 대가족을 거느린 집안 어른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진료실에서 움직이는 모습은 그냥 콧소리 흥얼거리는 농부의 즐거움과 비슷하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나 자신의 공간을 돌아다는 것은 위험 있는 왕의 모습과 겸허하고 충실한 신하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난다. 때로는 진료실과 처치실 사이를 유연하고 소리 없이, 매끄러운 발걸음으로 춤추 듯 움직이기도 한다.
나는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건강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강한 햇볕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늘에서 휴식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부드럽고 조용한 환경에서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활력적이고 강인한 상황에서 더 발전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 돕고 의지하는 사람, 서로 가깝게 어울리지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비법도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주기적으로 삶의 리듬을 유지하게 하고, 먹고 살만큼 수익을 주고, 환자들을 관심과 사랑으로 돌보고 약을 주고 치료를 하는 대가로 내가 얻는 것은 항상 내가 실제로 살아가는데 필요하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신선한 동기로 다가온다.
그런 것들이 내 삶에 대한 관심을 깨어나고, 그 이상의 열의까지 갖게 만든다. 더 중요한 것은 날마다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과도 같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평생 진료실에서 배운 것들이다. 조바심은 무의미하고, 참고 견디는 사람에게 복이 온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