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부족한 점을 자각하고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하면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태도는 우리 어릴 때는 중요한 미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자신의 결정이 중요해지면서 의미가 퇴색되기도 했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며 경제발전을 통해 국가의 운명을 개척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강조되면서 겸손이 자칫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려는 의도적인 책임회피의 자세로 자존감과 대척점에서 굴복과 비슷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자존감에 의한 책임감이 자신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것이라면 책임회피를 은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겸손은 이기적인 사회적 악덕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똑똑한 사람은 많은 데,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돌아보면 겸손의 의미가 달리 보인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사업체가 경기 변화에 따라 곤두박질치며 파도처럼 부서져 흩어져 흔적 없이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깊이 결속하고 악수 한 번으로 계약을 맺고 신의를 지키던 과거를 그리워한다.
약속이 삶이라는 여정에서 나와 상대를 결속시킨다. 서로 존중하며 겸손한 태도로 자신을 재발견해 왔다. 요즘 같은 코비드-19 사태에서 실제로 보건 서비스 치료 및 예방적 개입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 권리와 보호가 어떻게 수용되고 제공되고 행사되는지 발견하는 것이다.
"이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도 겸손이 형성되고 성장할 수 있다. 투표권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임무는 자신의 현실적 문제에 대해 용기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용기는 겸손함에도 있다. 용기를 낸다는 것은 일상의 삶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아무도 원하는 않는 말이라도 크게 외쳐야 하는 순간적 어려움과 갈등도 마주하기도 해야 하지만, 지금이 과연 용기를 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거나 어떻게 내야 할지 몰라 망서릴 때도 있다. 용기를 낸 결과 집단 공동체에서 퇴출당하는 일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실천하는 것, 나의 자의식에 따라 행동하는 것, 나 자신의 고유한 삶의 가치를 찾고 나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살아가면서 이루어야 할 일이 있는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용감해지기 위해 스스로 강해진다. 목표 달성이 다시 자신을 성장시키지만, 항상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삶과 인생을 걷거나 달리거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새롭게 방향을 잡기도 한다.
혼자 살 때는 나 자신과 나의 소망이 중심이었다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을 향한 시각이 필요하다. 겸손에는 스스로를 낮추는 용기와 상대를 위해 그런 환경에 맞춰 자신 모습을 변화시키면서까지 헌신하려는 물처럼 걸림이 없는 배려심 깊은 태도가 아닐까?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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