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0.03.19 + 작 성 자 : 관리자
+ 제     목 : 창문을 통해 도로에 다니는 차를 바라보는 것은 자연스런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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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정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자신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철학과 종교에서 '나(我)'는 대체로 자아(自我) 또는 영원한 자아의 뜻으로 해석된다. '나'와 '내 것'은 전통적인 불교 용어로는 각각 아(我)와 아소(我所)라고 한다.

무아(無我)를 근본진리로 보는 불교적 관점에 따르면 '나(我)'는 근본번뇌 가운데 하나인 아견(我見) 또는 아소견(我所見)을 의미한다. 즉 '나라는 잘못된 견해' 또는 '내 것이라는 그릇된 견해'를 의미한다.

'에고', '나', '자아의식'은 내가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일들과 관계를 맺을 때 이용하는 하나의 도구 혹은 수단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우리가 배우는 지혜는 내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다소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나의 경험이 어느 정도는 내 마음에 의해 조건이 지워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것에 갇혀 버리는 경향은 안 되지만, 요즘의 이념주의자들은 완전히 자신들의 이념에 빠진 경향이 있다.

내 마음을 바꾸려 애를 쓰든, 아니면 생각과 감정과 강박적인 습관들에 단순히 지배당하든, 어느 쪽이든 갇히기는 마찬가지다. 해결책은 일상 속에 일어나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 등을 마음 그 자체의 무한한 잠재 능력의 다양한 표현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기 위해 마음을 이용하는 일이다. 이것이 불교적 명상의 기본 정의이다. 명상은 자신과 자신의 마음이 친해지는 것이다. 명상을 통해 나 자신의 마음과 비로소 친해지기 시작한다.

마음은 내가 나 자신과 주위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나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어렵다. 거울 없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려 애쓰는 일과 비슷하다.

얼굴은 분명히 있으며 어떻게 생겼다는 것은 알지만 약간 애매모호하다.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 외 모든 조건들에 따라 얼굴에 영향이 가해지고 인상과 표정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그 생긴 모양인 생김새가 불명확하다.

마찬가지로 나는 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의 생김새는 끊임없이 겹쳐지는 생각과 느낌과 기분들에 따라 애매모호해진다. 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에 대한 나의 생각과 느낌, 또 그 생각과 느낌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이 겹쳐진다.

우리 마음은 언제나 쉬지 않고 활동적이다. 이 모든 것들이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마음이 정의내리는 습관에 사로잡혀 밖을 내다보게 해 주는 것이 창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창문과 풍경을 함께 바라봐 주는 것이 마음 보기이, 즉 명상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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