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일상적인 삶은 뭔가 배움과 그를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의 과정이다. 그런 수행을 통해 스스로 얻은 깨달음을 자식이나 가족 등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어 그들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권력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 사회에는 개인적인 죄 말고도 사회적 죄가 있다. 불교적 표현은 무지로 인한 탐욕이 사회구조, 경제 및 정치적 정책, 그리고 문화적 태도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적 무지와 탐욕은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가지게 되고, 개인적인 무지가 사회의 무지가 되고, 개인들의 탐욕이 국가의 탐욕이 되고, 개인들의 고통이 사회의 고통으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들의 깨달음과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요즘 카비드-19의 엄중한 사태에서 강조되는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보듯이 종교인들의 바른 삶에 대한 몰이해가 초래하는 깨달음의 부족이다.
우리는 무지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개인들만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죄를 강조했던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 유행하던 남미 해방신학자들의 주장이 지닌 중요성을 현대의 종교가들은 잊고 있다는 사실이다.
깨달은 개인들이 살고 있음에도 사람들을 해치는 사회적 경제적 구조는 변함이 없으며, 개인의 업만이 아니라 사회적 업도 있다. 개인의 업과 사회적 업은 원인은 같은 업일 수 있지만 다른 몸 안에 살고 있다.
모든 고통이 사실은 탐욕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필요한 개인적 성찰과 함께, 탐욕이 경제적, 법적 수단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사회적 성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의 고통을 초래하는 사회구조의 궁극적 원인은 개인의 마음과 행동이지만, 우리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변화시키려면 동시에 사회구조도 변화시켜야만 한다는 의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른 삶이다.
즉 팔정도의 다섯 번째 가르침인 정명(正命)은 깨달음을 추구하기 이전에 직업부터 바꿀 필요도 있음을 훈계하고 있다. 해방신학자들이 사회변화는 개인의 변화 이상을 요구한다면, 부처님은 어떻게 사회구조를 바꿀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조언을 하신다.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을 통해 악행과 탐욕의 유혹에 빠지지 않은 바른 삶을 통해 부정, 부패와 방탕을 멀리하는 청정하고 명랑한 일상 생활을 지향하는 정당한 삶의 방식으로 의식주를 구하여 생활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