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엘리베이터 박스처럼 우리 능력을 제한하는 일종의 한계가 아니다. 신체적 욕구에 얽매임 없이, 무지와 욕망, 그리고 혐오감에 휘둘림 없이 자유롭게 그냥 떠다닐 수 있지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한계점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관점을 바꾸어 생각하면, 신체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외견상으로는 불행해 보이는 축복이며, 자각의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는 풍부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아있는 동안 계속하는 호흡을 관찰하는 일 같은 것이다.
호흡은 그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동작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물리적 화학적 생리적 과정들은 접어두고, 콧구명을 통과하는 공기의 이동과 폐를 가득 채웠다가 빠져나가는 공기의 감촉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호흡에 집중하는 단순한 행위가 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 마음을 고요하게 깨어 있는 상태로 만들어 지금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조금 더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반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떤 상황이나 사건, 또는 너무도 생생한 기억이나 강렬한 감정에 압도당하면 호흡이라는 단순한 신체감각에 주의를 집중해보자. 어느 누구도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또 알아차리지도 못할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집중의 대상으로 호흡을 이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순히 들숨과 날숨의 횟수를 세는 것이다. 첫 들숨과 날숨에 하나, 그 다음 들숨과 날숨에 둘, 이렇게 스물하나가 될 때까지 계속하고 나면, 다시 하나부터 시작한다.
호흡을 집중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이 방법을 다른 신체 경험들로도 넓혀 갈 수 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퇴행성 관절염 등의 통증을 호소하는 어르신들에게 통증 그 자체를 하나의 주시 대상으로 삼아볼 것을 권하면 효과를 느낀다는 분들이 많다.
통증 자체를 아주 친하지 않는 그저 밋밋한 정도의 친구 정도로 생각하고 통증이 한 번 올 때마다 그런 친구가 한 사람, 두 사람 온 것으로 생각하고 인사하며 편하게 지내고 가도록 이야기하고 두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통증이 올 때마다 한 명, 두 명..하고 세면서 인사하고 부탁의 말을 전하며, 통증을 하나의 주시 대상으로 삼으면 통증의 강도가 훤씬 약해지고 어느 새 사라지고 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통증을 하나의 마음의 표현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더 넓은 자각으로 이끌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증을 더 강한 약에만 의존하여 성격을 예민하고 불안하고 괴팍하게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더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