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있고, 우리도 자신을 자주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순수한 영혼인 불성을 깨닫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이미 근본적으로 깨쳐 있어서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부처의 본성이 바로 불성이다.
단지 그런 상황적 현상을 자각하기만 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얻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여러 다양한 계층의 해석과 이해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성은 평등하고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불성은 모든 유정물들에 고정불변한 본성이라고 하면, 내가 나이게끔 만들어주는 자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처님의 제법무아의 가르침과는 서로 양립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모든 사물은 조건에 의해 생성되고 지속되고 소멸되고 있다.
만약 불성이 존재한다면 불성은 조건에 의해 생멸하거나 조건에 의해 생멸하지 않게 된다. 우리의 본성을 조건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무상한 조건들에 의지하는 한은 고정불변한 본성이 될 수 없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조건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데, 불성의 자기 기원은 불가능하다. 태어날 때 이미 불성이 있었다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 다시 솟아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자기 기원을 불가능하다.
불성은 내가 태어남으로써 스스로 솟아올라 존재할 수 없다면 무(無)로부터 나올 수는 없으므로 불성이 자기 스스로 생겨나는 것은 불가능해서 역시 고정불변하며 상주하는 불성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불성 대신에 자성을 대입해도 똑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불성 또는 본성이라는 대단히 편리한 개념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일상 언어에 흔히 사용하면서 그 대상이 세상에 실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상, 인터넷, 스마트폰, 엔진 등 어떤 대상물이 수행하는 기능에 의해 정의되는 사물들이 모두 그렇다. 자동차 엔진은 휘발유나 등유를 연소시켜 나오는 화학 에너지를 이용해 바퀴를 돌려 운동 에너지를 생산한다.
엔진의 모양은 다양하며, 재질도 반드시 금속일 필요도 없으며, 원칙적으로는 세라믹이나 돌 또는 프라스틱으로도 만들 수 있다. 어떤 것이든 화학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변환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의 소재는 상관 없이 모두 엔진이다.
사람들도 똑같다. 각자가 자신의 근기에 따라 생각과 깨달음을 이루는 데 적합한 심신의 상태가 다르며, 그런 다양한 심신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결정될 것이며, 공통된 어떤 필연적 속성 같은 것은 없지만, 깨달음을 위한 구체적 심신의 상태인 불성은 있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한 주 시작해 보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