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성 일 : 2020.09.23 + 작 성 자 : 관리자
+ 제     목 : 아무것도 남지 않은 순간의 그 아무것도 없음이 진실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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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없을 때 모두가 착하고 비둘기처럼 착하고 순수해 보인다. 그것은 당연하다. 힘이 없는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인가. 어린 아이들이나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다.

사람은 힘을 얻었을 때만 진정한 그의 본성이 제대로 드러난다. 그런 모든 힘은 추종자로부터 생겨나고, 힘이 생겨나면 교활해지고, 타락하고 교묘해진다. 힘을 가져봐야 과연 다른 사람을 해칠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된다.

힘 그 자체가 부패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패를 일깨우게 된다. 힘이 없을 때고 이미 타락해서 어둠 속에 서 있었지만, 힘이 생기면서 빛 속으로 나오게 된 것뿐이다. 빛이 자신을 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 줄 뿐이다.

매우 존경받고 사랑받았던 어떤 정치가는 전체주의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권력을 가지게 되자 사람들이 비난하고 적대적이 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좋아한다. 무관심은 자신의 자아를 가장 크게 상처 입히기 때문이다.

자아는 무관심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하거나 반대하거나 하는 관심 속에서만 '나'라는 자아는 존재할 수 있다. 깨달은 사람들이 알려지는 것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과 정치인들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정치가들은 그런 관심을 스스로 찾아 나서지만, 깨달은 성인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으며, 그를 알려면 사람들이 그를 찾아 나서야 한다. 완전한 덕을 갖추고 있을 때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에는 어떤 욕구도 동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할 때만 무엇인가를 생산하여 균형을 맞추려는 욕구와 동기가 발동하게 된다.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은 욕망에서 나온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을 메꿀 수 있는 뭔가를 창조하는 것이다. 완벽해질수록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아무 것도 만들어 내지 않게 된다. 오직 스스로가 창조의 영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이 정말로 우리들에게 필요한 덕을 갖추고 있다면 모든 현실적 실용주의자들의 목표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곳에는 놀이만이 있고 아무런 생산도 없으며, 모든 것인 단지 하나의 놀이가 될 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즐길 뿐 펠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없다고 느낄 때 진정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다. 진짜로 없으면 그런 있고 없음을 느낄 존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깨달을수록 '나'라는 자아나 영혼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렇게 주장하거나 판단할 누군가는 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텅빈 '공'의 뒤에 숨은 '나'라는 자아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래서 양파 껍질 벗기듯 계속해서 하나씩 나를 싸고 있는 껍질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벗겨나가는 과정이 나를 들여다 보는 명상의 과정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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