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구의 10%가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전 세계 부의 90%를 거머쥐고 있다. 지난 날 세계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전설적인 통치자들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더 엄청난 부를 지금은 몇몇 소수가 쥐고 있다.
노동을 우상화하거나 경제적 성공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사회는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혼란 속에서도 누구도 어렵다고 삶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가난이란 굶주림과 궁핍함이 아니라 소박하지만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한다.
우리가 1997년도에 경험했던 IMF 외환위기 시절의 초긴축 경제 생활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겠다. 힘들지만 매우 창조적이었던 시간들이었으며,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적은 것을 가지고도 넉넉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소비사회에서는 거의 경험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손과 머리와 영혼의 노동이 하나로 어우러져 평화롭고 화목한 삶, 한 장소에서 뿌리내리고 사는 삶을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예전의 수행자들처럼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한다.
씨를 뿌리고 추수도 하고, 가축을 기르고, 옷을 짜고 염색도 하고 깁기도 하고, 다양한 연장과 시장을 직접 만들고, 읽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책을 직접 베껴 쓰면서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적 모범이 되었다.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세분화되면서 인간과 노동이 분리되고,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더 이상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동양의 성인들은 모든 것을 하늘과 자연, 인간과 일의 관계 속에서 사유했다.
모두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관계다. 세상 모든 것이 수행처, 즉 인생의 학교이며, 개개인 모두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잃어버린 삶의 의미와 조화를 다시 발견하도록 가르친다.
수행 공동체에서 노동은 기도와 수행의 연장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상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기 위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수행해야 할 의무였으며, 하루 일하지 않는 수행자는 하루를 굶어야 했다. 노동은 생계유지의 토대인 동시에 이웃 사랑의 훈련이다.
불공정한 소득 분배가 사람들을 변질시키고 시기와 사치와 잘못된 권력으로 귀결되는 것을 예견할 있게 되면서, 어느 누구도 자기 재산을 소유해서는 안 되며, 아무 것도, 심지어 책과 책상과 필기구도 소유하지 않으려 수행자들은 노력했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 접하는 여러 가지 악덕 중에서 특히 소유욕을 근절하기 위해 스스로 적절한 노력을 해야 하며, 주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게, 필요에 따라 일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균형감과 지혜로움이 베어 있는 삶이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