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으로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든, 아니면 집을 떠나 절로 들어가든 내 마음은 늘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나'라는 자아가 내 모든 생각의 근원이다. '내'가 지금 현재 여기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만들어 내고, 내 가정이 있고, 역할이 있다.
내가 절로 들어가더라도 '가장'이라는 생각이 '출가 수행자'라는 생각으로 바뀔 뿐 있는 환경이 가정에서 절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마음의 장애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새롭게 바뀐 환경 때문에 장애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환경을 바꾼다고 해서 내 인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이 유일한 장애물이며, 집에 있든 절에 있든 그 마음을 극복해야 할 뿐이다. 절에서 극복할 일을 집에서는 왜 못하겠는가?
욕망을 버리면 진실로 세상 속에 녹아들어 나 자신의 사랑을 우주 전체로 확장할 수 있다. 하느님에게 진정으로 헌신하는 사람에게는 '버림'이라는 말보다는 '사랑의 확장'이라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이다.
표면적으로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위와 종교와 인종의 경계를 넘어 보다 넓은 세상으로 사랑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가한다'는 말은 집에서 입던 옷을 벗는다는 의미이다.
세속에서 입던 옷을 벗고 집을 떠나는 이유는 가까운 사람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만큼 자신의 사랑이 커졌기 때문이며, 다 익은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집을 떠나게 된다.
'내가 일한다'는 느낌이 장애물이다. 일하는 내가 누구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자. 그러면 일이 나 자신을 속박하지 않을 것이고, 저절로 일이 진행될 것이다. 꼭 가정을 떠나지 않더라도 사랑을 세상에 확장시킬 수 있다.
어떤 일을 일부러 하려고 노력하지도, 그만두려 노력하지도 말자. 그런 의식적 노력이 바로 속박이자 장애물이다.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일어날 일은 언제고 일어날 것이다. 일을 하지 않도록 정해져 있다면, 일을 찾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게 된다.
만약 일을 하도록 정해져 있다면, 일을 피할 길이 없으며 결국 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일을 해야 할 일은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임을 믿고 열심히 하면 된다.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런 쓸데 없는 의심에서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상의 일은 세상의 정한 이치에 따라 맡겨두자. 내가 원한다고 해도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원하거나 하기 싫더라도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하면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도 삼매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오늘도 흥겹고 행복한 하루 만들어 가시길 빕니다. 이동윤 드림 |